민노총 조직쟁의실장이 코레일 이사회 의장 맡아
계열사에는 전문성 없는 文 캠프 인사 일색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노동계와 여당 출신 인사들이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자회사를 장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레일에선 민주노총과 문재인 대선캠프 출신 인사들이 비상임이사에 앉았고, 발권 및 시설 관리를 맡는 코레일네트웍스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출신자들이 사장과 이사회를 차지했다.

◇ 신임 비상임이사 4명 중 민노총 출신 2명, 대선캠프 출신 1명

19일 이학재 바른미래당 의원이 코레일과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바뀐 코레일 비상임이사(사외이사) 4명 가운데 2명이 민주노총 출신 인사였다. 이사회 의장을 맡은 김정근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 이사장은 보일러공장 해고 노동자 출신으로 1980년대 초중반부터 노조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민주노총 조직쟁의실장, 대외협력국장, 총무국장 등을 지냈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후보 노동특보를 맡았다.

비상임이사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민주노총 정책부장, 민주노동당 전문위원, 심상정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노동계의 정책통이다. 오 씨는 친(親)노조 입장에서 코레일 문제를 지적하는 칼럼을 지속적으로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해왔다. 오 씨는 비상임이사로 선임되고 한 달 뒤인 6월 19일에도 경향신문에 ‘KTX 승무서비스는 한 팀이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객실 승무원의 코레일 정규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철도업계 안팎에선 "사실상 코레일 노조쪽 인사가 이사회 의장과 사외이사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나 진배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코레일 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이다.

또다른 비상임이사인 이충남 뉴에너텍 사장은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대선캠프 부동산특위 위원장을 지냈다. 뉴에너텍은 코레일 사업과 상관없는 태양광 발전기 설치 전문 기업이다. 이 사장은 산경에너지신문이라는 에너지 전문 신문의 부사장과 대기자도 겸임하고 있다.

◇ 코레일 계열사도 여권 출신 인사 일색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정치권에서 정세균계로 분류된다. 지난 2005년 오영식 당시 의원이 정세균 당시 열린우리당 대표(오른쪽부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역사 시설 관리와 발권 업무 등을 담당하는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는 사장과 임원진들을 정치권 출신으로 채웠다. 강귀섭 사장은 정세균 전 국회의장 보좌관 출신으로 직전에 차준택 인천 부평구청장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그는 쌍용종합상사에서 12년간 근무한 뒤 쌍용 이사 출신인 정 전 의장의 보좌진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코레일네트웍스 사업과 관련된 경력은 전무하다. 강 사장이 선임된 배경으로는 오영식 코레일 사장과 정세균 의장 간의 관계가 거론된다. 오 사장은 3선 의원 출신으로 정치인 시절 정세균계로 분류됐다.

강 사장과 함께 선임된 하석태 교통사업본부장(상임이사)은 영어학원장 출신이다. 한샘학원 대표 영어 강사를 지냈고, 2002년 자신의 이름을 딴 영어학원을 차렸다. 영어교육과 관련된 책도 여러 권 냈다. 그 후 서울 양천구 구청장과 국회의원 경선에 출마했고, 2018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유세본부장을 맡았다. 코레일네트웍스와 연관 경력이라면 양천구 시설관리공단 경영본부장을 맡은 게 유일하다.

비상임이사인 추인철씨는 한국금융공학컨설팅 솔루션사업 본부장을 지냈고 민주당 강남을 지역위원회 대외협력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다른 비상임이사 정진화 성신여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는 정청래 전 의원의 보좌진 출신으로 문재인 후보 대선캠프 정책본부 팀원으로 일한 정치권 인사다. 현재 공론조사 전문업체 코리아스픽스 책임연구원으로도 재직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상급노조인 민주노총 출신들이 코레일 사외이사 자리에 앉은 2017년 이후에는 별다른 입장을 내고 있지 않다. 지난 2012년 철도노조가 경기도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낙하산 코드 인사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다른 계열사에도 정치권 출신이 임원으로 대거 투하됐다. 김두진 코레일관광개발 상임이사는 민주당 경북도당 대변인, 사무처장, 조직국장 등을 역임한 당료(黨僚)다.

코레일유통 비상임이사인 이덕형 루맨 회장은 한국예총 대외협력위원장 등을 맡았으며 2017 대선 당시에는 문재인 캠프 문화예술정책위원회 상임정책위원을 지냈다. 박윤희 코레일유통 비상임이사는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외곽조직인 더불어포럼 운영위원을 맡은 것을 주요 경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코레일로지스 이사 김종옥씨는 서울 노원구의회 의장을 역임했고, 2006년 총선에서 노원구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권은찬 코레일로지스 감사도 도봉구의회에서 2002~2010년 구의원을 지낸 뒤 도봉구 시설관리공단 경영지원팀장, 사외이사 등을 역임했다. 백기태 코레일테크 비상임이사는 도료 업체 PPG-SSC의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2017년 대선 당시 민주당 울산시당 선거대책본부 노동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정치권에서 활동해왔다.

이학재 의원은 "관련 경력이 전무한 사람이 상임이사를 맡는 등 민주당 ‘캠코더(선거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의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해서 코레일의 정치권 낙하산 문제는 상당히 심한 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