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미국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는 호재성 이슈가 전해졌지만 한국 증시는 외국인과 기관의 쌍끌이 매도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연초 대비 30% 가까이 주저앉은 중국 증시가 이번에도 국내 주식시장의 발목을 붙잡았다. 중국과 무역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전투기를 중국 앞바다에 띄우며 중국 증시를 더 흔들고 있다.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으로 해석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도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 외인·기관 ‘팔자’…원화는 약세

18일 코스피지수는 전장보다 0.89%(19.20포인트) 떨어진 2148.31에 장을 마쳤다. 전날 2160대를 회복했던 코스피지수는 하루 만에 다시 2140대로 내려앉았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537억원, 2190억원 순매도하며 지수 하락을 부추겼다. 개인은 2667억원 순매수했다. 코스피200선물은 개인과 기관이 각각 297계약, 702계약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590계약 순매수했다. 프로그램 매매는 차익거래가 128억원 순매수, 비차익거래가 590억원 순매도로 총 462억원의 매도 우위를 나타냈다.

코스닥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06%(7.81포인트) 내린 731.34에 마감했다. 코스닥시장에서도 외국인은 961억원, 기관은 372억원 순매도했다. 개인만 1354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이날은 새벽부터 9월 FOMC 의사록 공개, 미국의 반기 환율보고서 발표 등 굵직한 이슈가 많았다. 우선 FOMC 의사록에서 연방준비제도(연준) 위원들은 점진적인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비둘기파적(통화완화 선호)인 내용이 기대보다 적었다는 실망감에 뉴욕 증시의 주요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환율보고서에서는 중국이 환율조작국 낙인을 피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증권가 전문가들은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안소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지속적으로 위협하면서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며 "양국 관계가 개선된 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날 국내 증시는 출발부터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중국 증시마저 3% 가까이 추락하며 국내 증시의 낙폭을 키웠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운송장비, 철강·금속, 화학, 기계, 의약품, 건설, 금융, 전기·전자 등 대다수 업종이 약세를 나타냈다. 상승 업종은 통신과 전기가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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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도 대부분 무너졌다. SK하이닉스(000660)현대차(005380), POSCO, LG화학(051910), KB금융(105560), NAVER(035420)등이 2~3%대의 하락율을 기록했다. 대장주 삼성전자(005930)셀트리온(068270),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신한지주(055550), SK(034730)등도 흔들렸다. SK텔레콤(017670)SK이노베이션(096770), 한국전력(015760)등은 약세장에서도 힘을 내며 상승 마감했다.

중국 위안화 가치가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인 점도 국내 통화시장과 증시의 변동성을 키운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날 중국 인민은행은 달러화 대비 위안화 기준환율을 전날보다 0.25% 오른 6.9275위안으로 고시했다. 위안화 가치가 큰 폭으로 절하되자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도 크게 상승(원화 약세)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8.7원 오른 1135.2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 11일(1144.4원) 이후 최저치다.

◇ 골칫덩이 중국 증시…올해 30% 추락

최근 한국 증시는 중국 주식시장과 밀접한 연관성을 나타내고 있다. 2월 고점 대비 29%가량 떨어져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중국 증시가 살아나지 않으면 국내 주식시장의 약세장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당장의 분위기만 놓고 보면 중국 증시는 쉽게 살아날 것 같지 않다. 우선 미국과 중국의 팽팽한 기싸움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날도 중국 증시 폭락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남중국해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가 거론됐다. 미군 태평양 공군사령부는 17일(현지 시각) 성명을 통해 "미 공군 B-52 전략 폭격기 2대가 16일 남중국해 부근에서의 통상적인 훈련 임무를 위해 앤더스 공군기지를 출발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국방부는 즉각 "미 군용기의 도발행위를 반대한다"고 비난했다. B-52는 지난달 말에도 남중국해 상공에서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여기에 중국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주식 매입이 오히려 중국 증시의 불안감을 키운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중국 정부는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주식 매입을 승인했다. 서상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민간기업 대주주들의 주식담보대출 관련 반대매매 물량을 지방정부가 매수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높아지면서 중국 증시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서 연구원은 "전날 미국 상무장관이 중국과의 대화가 단절돼 있다고 언급하며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이슈가 부각된 점도 부담스럽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면 한국 경제는 휘청일 수밖에 없다. 이재선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산된다면 대(對)중국 중간재 수출 품목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