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베스핀글로벌은 17일 싱가포르 벤처투자사 ST텔레미디어와 중국 레전드캐피털, 국내 DY홀딩스 3곳에서 1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이달과 다음 달에 각각 870억원·230억원의 자금이 들어온다. 올해 국내 스타트업계의 최대(最大)투자 유치다. 이 회사는 올 초에도 ST텔레미디어에서 300억원을 투자받았다. 작년까지 포함하면 창업한 지 3년도 안 돼 1500여 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회사는 작년에 매출 120억원을 냈고 올해는 1000억~1100억원 매출을 기록할 전망이다. 하지만 여전히 적자(赤字)를 내고 있다.

투자자들이 적자 기업에 거금을 낸 이유는 이 회사의 기술력에 있다. 이 회사는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관리용 소프트웨어 개발·운영 업체다. 이 회사 창업자인 이한주 대표는 "미국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나 중국의 알리바바가 클라우드라는 거대한 빌딩을 만들어 전 세계 기업들에 데이터 저장 공간을 빌려준다면, 우리는 그 입주 기업들에 최적화된 인테리어를 제공하는 역할"이라고 했다.

국내 스타트업들이 첨단 기술력을 앞세워 미국·중국·싱가포르·일본 등 해외 투자자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잇따라 유치하고 있다. 이들은 첨단 기술력과 세계 시장 공략을 목표로 내건 점에서 참신한 사업 모델 중심의 기존 스타트업과는 차별화된다. 그동안 스타트업계의 주류는 음식 주문이나 숙박과 같은 오프라인 사업을 스마트폰에서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O2O(온·오프라인 연계)'이었고 내수용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세계에서 통(通)할 기술

베스핀글로벌의 경우 클라우드 서비스 구축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기업들이 여러 브랜드의 클라우드 서버를 섞어 쓰더라도, 온라인 서비스가 원할하게 제공되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예컨대 중국 국적사인 에어차이나가 항공권 예약·관리 온라인 서비스를 위해 아마존알리바바 등 서로 다른 클라우드 서버(대형컴퓨터)를 임대하더라도 베스핀이 독자 개발한 '옵스나우' 소프트웨어를 통해 서로 다른 서버를 마치 하나의 서버처럼 매끄럽게 운영해준다. 베스핀은 국내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에서도 유일하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대표는 "현재 고객사는 인민일보, 현대차, 폭스바겐, 도요타, 맥도널드차이나 등 400여 곳"이라며 "고객사 2500곳을 확보해 매출 5000억원을 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세계 클라우드 컨설팅·구축 시장은 작년 721억달러에서 2022년에 1833억달러(약 206조원)로 급팽창할 전망이다.

보안 기술 스타트업 에버스핀은 지난 5월 일본 금융업체 SBI홀딩스와 홍콩 사모펀드(PEF) 블랙파인에서 210억원을 투자받았다. 이 회사는 모바일 앱(응용 프로그램) 보안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다. 이 기술은 매번 앱을 실행할 때마다 앱을 구성하는 소스 코드를 바꾸는 방식이다. 설계도가 계속 바뀌니 사실상 해킹이 불가능한 것이다.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 6월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중국 세콰이어캐피털차이나에서 4000만달러(약 45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세계 3대 국부 펀드인 GIC가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회사의 핵심 기술은 상대방 전화번호만 알면 한두 번의 클릭만으로 간편 송금해주는 것이다. 이 회사는 작년에 미국 페이팔·굿워터캐피털 등에서 550억원을 투자받기도 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축구 영상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한 비프로일레븐도 지난 8월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으로부터 103억원을 투자받았다. 이 회사는 AI로 선수들의 슈팅·패스·태클 같은 움직임부터 경기 전체의 전략과 상황을 분석해 맞춤형 리포트를 팀에 제공한다.

해외 자금 유치한 스타트업들, 해외로 나간다

이 스타트업들은 국내보다는 해외시장 공략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해외 투자자와 함께 해외시장을 개척하기도 한다. 이 스타트업들의 기술과 투자사의 현지 네트워크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에버스핀은 투자사 SBI홀딩스와 일본 현지 합작사를 만들고 일본 금융업체들을 대상으로 보안 시스템 구축 사업에 나서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현지 기업인 MNC그룹과 합작사를 설립했다. 투자를 유치한 지 5개월도 되지 않아 아시아 전역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비프로일레븐은 아예 회사를 독일로 옮겨 유럽 스포츠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작년 독일에 첫 진출한 이래, 지금은 독일 분데스리가의 레버쿠젠, 마인츠 등 7국의 120여 구단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