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판매 부진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지붕 가족’인 현대자동차가 SUV 차종에서 잇따라 신차를 출시하면서 상대적으로 모델이 노후화된 기아차 SUV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7월 출시된 기아차 준중형 SUV 스포티지 더 볼드

17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올들어 9월까지 스토닉, 니로, 스포티지, 쏘렌토, 모하비 등 기아차 SUV 5종의 국내 판매량은 11만357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 감소했다. 지난해 7월 출시된 스토닉을 제외한 4종의 판매량은 10만846대로 전년동기대비 13.3% 줄었다.

각 차급에서 기아차의 주력 SUV 모델들은 판매량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중형 SUV 시장을 석권했던 쏘렌토의 경우 올들어 9월까지 5만596대가 판매돼 전년동기대비 11.9% 감소했다. 중형 SUV인 스포티지는 2만7802대로 9% 줄었고 대형 모델인 모하비는 6036대로 50.4% 급감했다.

문제는 최근 들어 판매 부진이 계속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쏘렌토는 판매량이 전년동월대비 60.6% 감소했고 소형 SUV 스토닉은 46.2% 줄었다. 모하비는 87.2% 급감한 154대가 팔리는데 그쳤다.

하이브리드 소형 SUV인 니로는 올들어 9월까지 판매량이 1만6412대로 전년동기대비 1.3% 증가해 체면치레를 했지만, 지난달 판매대수는 1999대로 17.3% 감소했다.

기아차는 지난달의 경우 추석연휴로 조업일수가 줄어 전체적인 판매대수가 감소했다고 설명했지만, 자동차 업계와 금융시장에서는 연휴의 영향을 감안해도 최근 판매 감소 폭이 너무 크다는 평가가 많다.

기아차 SUV 판매가 크게 감소한 데는 각 차급에서 경쟁하는 현대차 SUV 차종에서 신차가 계속 출시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현대차는 지난해 6월 소형 SUV 코나를 선보였다. 코나는 현대차가 창립 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소형 SUV라는 타이틀을 갖고 다양한 첨단 사양을 갖춰 출시했다. 출시 당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직접 소개를 맡을 정도로 자동차 업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에 비해 한 달 뒤 출시된 스토닉은 코나보다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줄곧 코나 판매량의 3분의 1 정도인 월 1500대 안팎의 판매량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코나는 올들어 전기차 모델인 코나 일렉트릭까지 출시돼 친환경차로 영역을 넓혔다. 게다가 올 연말쯤에는 하이브리드 모델도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이 때문에 니로가 독점하고 있던 친환경 소형 SUV 시장의 수요도 코나의 친환경 모델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기아차 쏘렌토

현대차는 지난 2월에는 6년만에 완전변경된 신형 4세대 싼타페도 출시했다. 싼타페는 중형 SUV 차급에서 판매 돌풍을 일으키면서 쏘렌토의 수요를 흡수했다. 올들어 9월까지 싼타페의 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103.8% 급증한 7만9777대를 기록했다. 최근 준중형 SUV 차급에서도 기아차는 상품성 개선 모델인 스포티지 더 볼드를 선보였지만, 현대차 역시 투싼의 부분변경 모델을 출시해 수요가 분산됐다.

모하비의 판매가 급감한 것도 소비자들이 올해 말 출시되는 현대차의 대형 SUV 팰리세이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팰리세이드는 베라크루즈, 맥스크루즈 등 기존 모델과 다른 신규 차종으로 지난해 쌍용차의 G4 렉스턴이 나온 후 신차가 없었던 대형 SUV 시장에서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아차는 올들어 세단 차종에서 잇따라 신차를 출시하며 판매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올들어 9월까지 기아차의 국내 전체 판매량은 39만4700대로 전년동기대비 1.6% 증가했다. 올해 출시한 준중형 세단 K3는 63.2% 증가한 3만3312대가 팔렸고 대형 플래그십 세단 K9도 616.4% 급증한 8468대가 판매됐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두각을 보였던 SUV 차종에서의 판매가 큰 폭으로 감소해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줄어들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기아차가 완전변경해 출시할 SUV 신차가 부족해 당분간 국내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쏘렌토의 경우 지난해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출시돼 2020년쯤 신차가 나올 예정이다. 스포티지 역시 2015년 4세대 모델이 나와 완전변경 모델은 2~3년 정도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올해 말 북미 시장에서 양산이 시작되는 기아차의 해외 전략형 대형 SUV 텔루라이드

다만, 해외 시장에서는 신차를 중심으로 판매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기아차는 올해 말 북미 시장에서 새로운 대형 SUV 모델인 텔루라이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텔루라이드는 북미를 포함한 해외에서만 판매되는 전략형 모델로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전량 생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