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바위솔은 볼수록 재미있는 식물입니다. 말이 여러해살이풀이지 한해살이풀도 되고 두해살이풀도 됩니다. 꽃 핀 후 열매를 맺고 나면 죽는 특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라난 첫 해에 꽃 피면 한해살이풀, 두 해만에 꽃 피면 두해살이풀, 여러 해 만에 꽃 피면 여러해살이풀로 살다 가는 셈입니다. 대개는 2~3년 안에 꽃 피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해살이풀이면서 꽃 피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식물은 대나무와 바위솔 정도뿐인 것 같습니다.

바위솔

바위솔이라는 이름은 바위에 붙어서 자라고 솔방울 모양인 데서 붙여졌습니다. 척박한 곳에서 잘 자라다 보니 오래된 기와지붕에 무리 지어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분은 부족해도 볕 잘 드는 곳이 기와지붕인지라 바위솔에게는 선호도 높은 주택입니다.

그렇게 기와지붕을 지키며 자라는 모습 때문에 바위솔을 ‘지붕지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별장을 지키면 별장지기, 등대를 지키면 등대지기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바위솔이라고 하면 대개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와송(瓦松)이라고 바꿔 소개하면 그제야 "아~~~" 하고 긴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아마 약재 이름으로 쓰는 와송으로 널리 알려져서 그런 모양입니다.

와송은 이름 그대로 기와에서 자라는 솔방울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정한 정식 명칭은 바위솔이니까 그걸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와지붕에서 자라는 바위솔

바위솔도 일가친척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일단 바위솔이 있고요, 좀바위솔, 둥근바위솔, 가지바위솔, 포천바위솔, 정선바위솔, 연화바위솔, 울릉연화바위솔, 진주바위솔, 난쟁이바위솔 정도가 알려졌습니다. 이 중 난쟁이바위솔은 Orostachys속이 아닌 Meterostachys속 식물이라 사뭇 다르니까 나머지만 구분하면 됩니다.

난쟁이바위솔은 바위솔과 사뭇 다른 식물이다

좀바위솔은 바위솔에 비해 매우 작아서 ‘좀’자가 붙었습니다. 작다고 해서 무조건 좀바위솔인 것은 아닙니다. 영양이 좀 불량한 상태에서 자란 바위솔이 작은 체구로 꽃 피기도 하니까요.

좀바위솔

둥근바위솔은 잎 끝이 둥근 점이 특징입니다. 강원도 바닷가 쪽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가지바위솔은 둥근바위솔과 비슷하면서 가지가 많이 갈라지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둥근바위솔 자체가 가지가 많이 갈라지는 것도 있으므로 둘을 같은 것으로 봐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둥근바위솔
가지바위솔

포천바위솔은 잎이 좀 더 가늘고 길지만 둥근바위솔과 비슷합니다. 정선바위솔은 석회암지대에서 잘 자라는 편인데, 잎이 보통 회녹색이지만 분홍색으로 예쁘게 물드는 것도 있으며 연화바위솔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연화바위솔은 제주도에서 자라며 잎이 연한 회녹색이라 정선바위솔과 비슷하면서 어린 개체가 연꽃 같은 모습입니다.

포천바위솔
정선바위솔의 분홍색 개체

연화바위솔의 품종인 울릉연화바위솔은 울릉도에서 자라는데, 모습이 연화바위솔과 거의 흡사합니다. 연구 결과 울릉연화바위솔은 제주도의 연화바위솔과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완전한 생식적 격리가 있어서 유전적 동질성이 매우 낮다고 합니다.

연화바위솔
울릉연화바위솔

제가 개인적으로 궁금해했던 것은 진주바위솔이었습니다. 남강이 흐르는 경남 진주시 어딘가에 있다고는 하는데 그게 어디인지 모르겠어서 그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얼굴입니다.

자생지 정보를 대충 전해 듣고 가보니 급경사의 절벽이라 하나뿐인 목숨이 걱정됐습니다. 바위가 비스킷처럼 바스러지는 석회암지대다 보니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왜장(倭將)을 안고 남강에 떨어진 논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많았으나 지금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주바위솔인지라 찾기가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절벽의 위아래를 한참이나 더듬다가 매의 눈으로 진주바위솔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개의 다리로 기어 올라가 보니 잎을 벌레가 먹은 건지 진주바위솔답지 않은 몰골을 한 녀석이었습니다.

진주바위솔

좀 더 진주바위솔다운 녀석을 찾아봐야겠다 싶어 계속해서 경사면을 뒤졌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진주바위솔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다닌 건지 동물이 다닌 건지 모를, 어쩌면 길이 아닌지도 모를 희미하고 비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다니며 헤매다 보니 입에서 된소리가 나왔습니다.

이게 뭔 짓인가 싶었습니다. 이미 먼 길을 와버렸기에 돌아가기도 뭣했습니다. 그때 볕이 잘 들 것 같은 바위지대가 저 멀리 보였습니다. 거기에 올라서기만 하면 진주바위솔이 까꿍 하고 나타날 것 같았습니다. 딱 거기까지만 가보자 해서 기운을 냈습니다.

진주바위솔의 어린 개체

미끄럼을 타며 나무를 붙잡고 간신히 올라갔다가 바로 턴해서 내려왔습니다. 뭔가 열심히 하고 있던 장수말벌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저를 발견하고는 제 눈높이로 붕 하고 떠올랐으니까요. 벌 알레르기가 있다 보니 그네들의 검은 선글라스만 봐도 오금이 저립니다.

그냥 돌아가기엔 너무 억울하다 싶어 좀 더 위쪽 코스로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좀 더 위험한 코스였습니다. 조심 또 조심하면서 올라가 보니 예상대로 볕이 잘 드는 바위가 나타났습니다. 그 바위를 훑어보다가 진주바위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어린 개체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둥근바위솔과 비슷한 유형의 진주바위솔

진주바위솔은 잎이 아주 납작하고 넓은 삼각형이며 잎의 끝이 검붉은색인 점이 특징입니다. 어른 개체도 몇 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둥근바위솔과 비슷한 것이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좀 더 많은 개체를 봤으면 좋았으련만 워낙 개체수가 적은 데다 머리 위쪽으로 자꾸 붕붕 하고 벌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려서 그 장소를 빨리 벗어나야 했습니다.

어쨌든 그 정도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아래쪽으로 지나갔으면 모르고 지나칠 뻔 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장수말벌 덕분에 보게 된 셈입니다.

전남 완도의 바위솔

바위솔 종류들은 사는 장소가 그렇게 외진 바위지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격리되고 한정된 장소에서 살다 보니 집단 내에서 오랫동안 자기들끼리 계속 근친교배가 이루어져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하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만의 특정한 모습으로 바뀐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바위솔 종류들은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다릅니다.

경북 소백산의 바위솔

제가 전남 완도에서 발견한 개체들은 잎이 좀 더 넓고 납작해서 바위솔의 변종 정도로 기록할 만합니다. 경북 소백산에서 발견한 개체들은 잎이 매우 길쭉해서 잘하면 신종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백두산의 바위솔 종류

백두산 고산지대의 개체들은 어린 식솔을 여럿 거느린 모습이어서 재미있습니다. 그밖에 아직 우리의 눈과 발이 닿지 못한 바위에 얼마나 다양한 모습의 바위솔 종류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척박한 환경이 만들어내는 자연적 예술작품을 하나라도 더 만나고 싶어 벼랑 끝을 서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