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위 등 4대 사정기관은 물론 법무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금융감독원, 관세청 등 정부 부처들까지 '대기업 전방위 조사'에 가세하고 있어, 가뜩이나 위축되고 있는 기업 투자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다.

16일 본지가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현 정부 들어 이명박 전 대통령 뇌물 공여,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설립 방해, 이건희 회장 조세 포탈 등의 혐의로 검찰 4건, 경찰 2건, 국세청 2건, 금융위 1건, 국토부 1건 등 총 10건이 넘는 조사를 받았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로 국민적인 공분을 샀던 한진그룹은 이후 검찰, 관세청, 법무부 이민특수조사대, 공정거래위원회, 교육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11개 기관에서 19건으로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16일 조 전 전무에 대해 무혐의로 결론을 내리고 기소하지 않았다. 또 SK그룹은 검찰 2건, 국세청 5건, 공정위 1건 등 8건, 현대자동차그룹은 검찰 2건, 경찰 1건 등 총 5건의 조사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롯데그룹은 공정위 7건, 경찰 1건 등 총 11건의 조사를 받았다. 추경호 의원은 "설령 잘못이 있더라도 이렇게 여러 기관이 일시에 달려들어 망신 주기·보여주기식 수사를 하면 기업의 이미지는 땅에 떨어진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기업에 투자와 일자리 늘리기를 주문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4대 사정기관, '기업 때리기' 경쟁

웬만한 대·중견기업 중에는 검찰·경찰·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 등 '4대 사정기관'의 조사나 압수수색을 받지 않은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검찰은 뇌물, 조세 포탈, 취업 특혜 등 혐의로 삼성·현대차·LG·SK 등 4대 그룹 계열사를 비롯해 대림산업·JW홀딩스·유한킴벌리·쿠팡 등 중견기업과 KB·하나·BNK·DGB·JB 등 금융사들을 수사했거나 수사 중이다.

경찰도 특수수사과와 지능범죄수사대를 중심으로 기업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대건설,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등 건설사들은 재개발·재건축 비리와 관련된 혐의로, KT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한진과 CJ파워캐스트는 이른바 '갑질' 의혹과 관련해 각각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서울청 조사4국을 중심으로 한화테크윈(방산 비리), 현대산업개발(비자금), BYC(탈세), 한국타이어(지분 편법 승계), 현대엔지니어링(하도급 비리) 등에 대해 특수 세무조사를 진행 중이다.

공정위에서는 하림·태광 등이 일감 몰아주기로, 아모레퍼시픽·세븐일레븐·이마트 등이 가맹점 불공정 행위로, 하림과 이동통신 3사가 가격 담합으로, LG전자·현대중공업 등이 하도급 갑질로 조사를 받았다.

◇압수수색 발부 사상 최대

문재인 정부 들어 사정기관들이 마치 충성 경쟁을 벌이듯 돌아가며 중복 수사를 벌이거나, 기업에 망신을 줄 목적으로 보여주기식 수사를 남발하는 경향이 부쩍 강해졌다.

올해 1~6월 법원의 압수수색영장 발부 건수는 11만8000여 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검찰과 경찰 등이 매일 650차례 사무실이나 개인의 자택, 휴대전화, 금융 계좌를 조사했다는 얘기다. 영장 신청이 남발되면서 올해 1~5월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기각률은 5.2%로 예년(2~3%)의 2배에 달했다.

이 때문에 요즘 10대 그룹 임원들 사이에서는 "정말 사업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쏟아져 나온다. 최근 여러 차례 압수수색을 받은 A기업 임원은 "한번 압수수색으로 털릴 때마다 업무가 마비된다"며 "경영진도 수시로 불려 나가다 보니 수사 대응 등에 힘을 쏟느라 내년 경영 계획을 세우는 데 큰 지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18차례 압수수색을 받은 대한항공의 경우 내년이 창사 50주년이지만 이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 단체의 고위 임원은 "한 기업이 워낙 여러 곳에서 수사를 받다 보니 국세청에서 나와 '관련 서류가 어디 있냐'고 했더니 '공정위에 있다'는 답변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이러니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가능하겠나"라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기업들이 밥을 지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기는커녕 밥통을 깨고 있다"며 "과잉 수사가 되지 않도록 압수수색 등에도 담당자 실명제를 실시하고, 사후에 적절한 것이었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