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날아 다니는 자동차가 승객과 화물을 싣고 다닐 날이 멀지 않았다."

지난 7월 영국의 판버러 국제 에어쇼에 참석한 그렉 히슬롭 보잉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수송과 이동성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자율 비행기가 몇 년 안에 시험 비행을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버 등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이 하늘을 나는 자동차 사업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보잉과 에어버스 등 굴지의 항공기 제작 기업들이 자율 비행기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페덱스·UPS 등 글로벌 운송 업체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항공 전문가들은 1950년대 제트 엔진 개발 이후 항공 산업이 유래없이 큰 '파괴적 기술 혁신 시대'로 진입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프랑스 에어버스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 비행 자동차’. 에어버스는 2025년까지 ‘나는 택시용’ 기체를 선보일 예정이다.사진=에어버스

조종사 품귀··· 자율 비행기 개발 눈돌려

항공기 제작사들이 자율 비행 기술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비행기 조종사들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자율 비행기를 도입하면 항공사들이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필요와 경제성이 맞아 떨어진다.

현재 세계 항공사들은 비행기 조종사들을 확보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항공 수요가 폭증하는 중국의 항공사들이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전세계 비행기 조종사들을 블랙 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어 항공사들이 조종사를 확보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장기적으로도 조종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중국 등의 항공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저가 항공사들이 급증, 앞으로 20년간 세계적으로 53만명 가량의 조종사가 필요하지만 현역 조종사는 20만명에 불과하다고 보잉은 진단했다.

이 때문에 고임금에다 양성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조종사를 대체하는 자율 비행기의 매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UBS는 비행기당 조종사 1명을 줄이면 항공사들이 연간 150억달러, 완전 자율 비행기가 도입되면 연간 300억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보고서를 지난 6월 발표했다.

우버의 ‘나는 택시' 개념도,

우버 등 기술 기업 공세에 자극

우버 등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의 ‘에어 택시’ 프로젝트도 항공 기업들에게 큰 자극이 되고 있다.

‘나는 택시(Flying Taxi)’를 개발 중인 우버는 빠르면 2년 뒤인 202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일본 도쿄에서 시범 운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우버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는 보잉, 미 항공우주국(NASA), 미 육군연구소가 참여하고 있는데 나사는 충돌 방지를 포함한 저고도 비행 기술, 미국 육군연구소는 소음이 줄어든 프로펠러 기술을 우버와 함께 개발하고 있다.

수직이착륙 기술을 가진 오로라 비행과학, 임브래어, 벨 헬리콥터, 충전 인프라 기업인 차지 포인트 등 스타트업 기업들도 우버 진영에 속속 합류했다.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가 개인 재산 1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스타트업 기업 '키티호크(Kitty Hawk)'도 다크 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키티호크는 작년 4월 전기로 작동하는 1인승 비행 자동차 플라이어(Flyer)가 호수 위를 나는 영상을 공개, 관심을 모았다. 키티호크는 궁극적으로 구글의 자율주행차 기술과 결합, 무인 비행기 개발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보잉이 작년 인수한 오로라 플라이트 사이언스의 자율 비행기 개념도,

"무인 화물기 등장 가능"

자율 여객기가 막상 하늘을 날기까지 넘어야할 산들이 적지 않다.

항공기 승객들의 불안감, 조종사 노조 등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 미비한 항공 관련 법규 등 난제가 한 둘이 아니다.

리 콜린스 미 조종사연대 대표는 "자율 비행 기술은 안전성이 전혀 검증 되지 않은 기술"이라며 "조종사 없는 비행기는 테러리스트들이 오랫동안 꿈꿔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히슬롭 보잉 CTO는 지난 9월 MIT 대학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자율비행 여객기에 앞서 자율비행 화물기가 먼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전에 대한 승객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거부감이 덜한 화물기부터 자율 비행기로 전환할 것이란 예상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도 화물 자동차들이 먼저 도입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대표적인 규제 산업인 항공 산업의 특성상 정치권의 움직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미국 하원은 지난 5일 '조종사 1명이 탑승하는 화물기 운항 연구'를 위한 예산 지원을 결의했다.

"비행기 조종사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고려했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인공지능, 자율 비행 기술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라마 스미스 하원의원(텍사스)은 전했다.

자율 비행 기술 개발이 차세대 기술 헤게모니 경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미국 정계의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