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년간 10~15% 안팎의 중(中)금리 대출을 확대하겠다며 각종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시중은행의 연 5% 안팎 저금리 상품과 연 15%를 웃도는 저축은행·대부업계의 고금리 상품 간 공백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은 가계 대출의 약 95%를 연 5% 미만의 저금리 대출로 채우고 있는 반면 저축은행은 반대로 전체 대출의 약 90%가 고금리 대출이다.

금융위원회는 11일 시중 금리 추이와 업계 상황 등을 반영해 현재 24%인 최고 금리를 향후 20%까지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최고 금리 20%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고 금리를 떨어뜨리더라도 중간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는 상황이라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서민·중산층이 시중은행에서 가계 대출을 거절당하면 고금리로 내몰릴 가능성은 여전하다. 금리 인상기가 본격화하면서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저금리 아니면 고금리…금리 단층 여전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에 따르면 시중은행과 보험사, 수협 등 상호금융권의 저금리 대출과 저축은행·대부업계의 고금리 대출 사이 '금리 단층'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시중은행 등에서 저금리 대출을 받지 못하면 저축은행·카드사 등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이때 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치솟는 것을 금리 단층 현상이라 한다. 이태규 의원실은 금감원과 나이스신용평가 등으로부터 전체 금융권의 금리대별 대출금액과 신용등급 자료 등을 받아 분석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시중은행 전체 가계 대출 중 약 95%가 연 5% 미만의 대출이었다. 반면 중금리 대출이라 볼 수 있는 연 10~15% 구간 대출은 전체 대출의 0.4%에 그쳤다. 수협·신협 등 상호금융권이나 보험사 가계 대출도 연 5% 미만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대출이 전체의 70%에 육박했다. 반면 연 10~15%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중금리 대출은 상호금융권은 0.4% 수준에 그쳤고, 보험사도 비중이 4%를 밑돌았다.

저축은행과 상위 20개 대부업체는 정반대 모습이다. 저축은행은 전체 대출 가운데 연 15% 이상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대출이 약 90%에 달했다. 대부업체는 한 발 더 나가 전체 대출의 약 97%가 연 20% 이상의 금리였다.

카드·캐피털 등 여신전문 금융회사도 비슷했다. 연 15% 이상의 금리를 적용하는 대출이 전체의 47%를 차지했다. 다만 10~15% 금리의 대출도 전체의 23%에 달해 상대적으로 중금리 대출 비중이 높았다.

고금리 내몰리는 중간 신용등급자

금리 단층이 여전한 것은 시중은행은 신용등급이 우수한 고신용자를 위주로 안전한 저금리 대출만 하고, 저축은행 등은 은행 대출이 어려운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비싼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고금리 대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태규 의원실이 분석한 결과 시중은행에서 가계 대출을 받는 사람들의 평균 신용등급은 2.9등급이고 평균 가계대출 금리는 3.72%였다. 반면 저축은행 대출자의 평균 신용등급은 5.6등급이었지만 평균 대출 금리는 14.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업체 이용자의 평균 신용등급은 7.1등급, 평균 대출금리는 26.5%에 이른다. 신용등급이 한두 등급만 떨어져도 대출 금리가 몇 배로 뛰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사잇돌 대출 등 정책금융 상품 외에 민간 중금리 대출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취지는 신용등급에 맞게 적정한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인데, 아직 금융 현장에서는 체감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태규 의원은 "정부가 십수년 동안 서민을 위한 민간 중금리 대출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중금리 대출 시장은 공백 상태라는 게 확인됐다"며 "금리 단층 현상은 서민이 오히려 더 높은 금리로 내몰리는 걸 부추겨 금융서비스의 부익부 빈익빈 구조를 고착화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