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할 대상은 스리랑카인이 아니다. 하찮은 풍등 하나로도 대형 화재가 번질 수 있게 설계한 담당자, 기름 탱크 주변에 잔디를 깔도록 결정한 자, 보안 담당자들을 줄줄이 구속하는 것이 옳다."

경찰이 7일 발생한 경기도 고양시 저유소 화재 피의자로 스리랑카인 A씨를 지목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기사에 한 독자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사고의 원인이 허술한 안전관리 체계 때문인데 왜 애꿎은 외국인 근로자 탓만 하느냐는 것이다.

저유소를 보유한 대한송유관공사는 사고 발생 초기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사고 당일 감시카메라 45대가 작동했지만 근처 공사장에서 날아온 풍등 불씨가 기름 탱크 주변 잔디를 18분간 태우는걸 까마득하게 몰랐기 때문이다.

기름 탱크 외부에는 불이나 연기가 날 경우 이를 감지할 장치가 없었고, 화재 예방을 위해 유증기 환풍구에 인화 방지망(불꽃이 닿으면 온도를 낮춰주는 금속망)도 없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지난 1990년에 공기업으로 출발, 2001년 정부가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면서 민영화된 회사다. SK이노베이션이 지분 41%를 가진 최대주주다.

SK그룹 계열사인 대한송유관공사 임직원은 지난해 1인당 평균 1억567만원(복리후생비·퇴직급여 포함)을 급여로 받았다. 근속연수가 긴 정유업계의 특성과 지난해 30%에 가까운 영업이익률을 낸 것을 감안하면 고액급여를 받는 것이 상식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풍등 불씨 하나도 못막을 정도로 무능력한 임직원 급여로 거액을 지출하면서 안전 관련 시설투자에는 소홀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한송유관공사는 SK 계열사로 편입된 2001년 이후 매년 약 99억원의 시설투자만 했다. 회사가 보유한 자산의 1.1%에 불과한 수준이다. 민영화 전 10년간 연 평균 880억원의 시설투자를 했던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사고 당일 풍등이 하나만 날아왔으니 망정이지 여러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날아왔다면 그 다음 벌어졌을 일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어찌보면 이번 사고로 수도권 상공에 태워 보낸 휘발유 266만L(43억5000만원어치)는 우리 사회에 안전불감증을 알린 비싼 수업료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풍등을 날린 사람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울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지, 대한송유관공사 직원들은 18분간 무엇을 했는지 낱낱이 밝히는 것이다. 허술한 안전관리 체계를 바로 세우고 위험천만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자들을 엄중 징계·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