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추측과 루머가 난무하던 국민연금공단 신임 기금운용본부장(CIO)에 안효준(사진) BNK금융지주 글로벌 총괄부문장(사장·55)이 낙점됐다. 해외투자를 강화하고 있는 국민연금 전략에 부합하는 경력을 쌓아왔고, 최종 후보군 가운데 유일하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근무했다는 점이 안 사장의 CIO 선임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는 ‘큰손’ 국민연금이 1년 3개월째 공석이던 CIO를 우여곡절 끝에라도 찾았다는데 안도하는 분위기다. 국내외 자본시장과 국민연금의 교류가 지금보다 원활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기금본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안 신임 CIO가 어수선한 조직을 서둘러 추스르고 기금운용직들의 줄이탈을 조금이나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그러나 안 CIO로선 전문 운용인력 충원과 투자 수익률 제고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또 국민연금이 지난 7월 도입한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는 안 CIO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 "수평적 업무 스타일…국민연금 애정 깊어"

국민연금공단은 8일 안 전 사장을 CIO로 최종 확정하고 이날 오후 전북 전주 국민연금 사옥에서 임명장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안 신임 CIO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짧게 말했다.

국민연금은 안 CIO 선임 배경에 대해 "홍콩, 뉴욕, 호주 등에서 18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어 글로벌 투자 감각과 영어구사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그와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이던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와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끝내 탈락의 쓴 맛을 봤다.

안 CIO는 업계를 대표하는 해외투자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3년생인 안 CIO는 부산 배정고와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호주국립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8년 서울증권 애널리스트로 여의도에 입성한 안 사장은 뉴욕사무소장과 해외운용팀장 등을 거치며 일찍부터 글로벌 시장에 대한 감을 익혔다. 대우증권에서도 홍콩법인 주식운용팀장으로 일했다.

2011년부터는 국민연금에 합류해 해외증권실과 주식운용실을 맡았다. 교보악사자산운용과 BNK투자증권에서 대표이사(CEO)를 역임하다가 지난해 11월부터 BNK금융지주 글로벌 총괄부문장(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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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지난 수년간 해외투자를 강화해왔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5월 회의를 열어 2019년도 자산군별 목표 투자 비중을 국내 주식 18.0%, 해외 주식 20.0%, 국내 채권 45.3%, 해외 채권 4.0%, 대체투자 12.7% 등으로 설정한 바 있다.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 비중이 국내 주식을 넘어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연금은 기금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오는 2023년까지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15% 내외로 축소하고 해외 주식 투자를 30%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고위 관계자는 안 CIO에 대해 "해외 투자 경험이 풍부해 국민연금이 현재 나아가려고 하는 투자전략 방향을 잘 이해하고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며 "실무뿐 아니라 CEO로서 조직 전체를 이끄는 훈련도 충분히 한 인물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적임자를 잘 뽑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투자금융업계 종사자들은 안 CIO가 평소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선호하고 실무자를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직 출신인 한 민간 운용사 임원은 "외국에서의 생활 경험 덕분인지 권위적이지 않고 실무자의 권한을 최대한 보장하는 편"이라며 "무엇보다 기금본부 출신으로서 조직 속사정을 훤히 알고 있으므로 업무 적응 속도가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기금운용직 출신 펀드매니저는 "현직에 몸담고 있는 금융사 사장이 연봉을 크게 줄여가면서까지 국민연금 CIO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 자체가 친정(국민연금 기금본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며 "사명감을 갖고 무너진 조직 살리기에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 난제 수두룩…퇴사 막고, 수익률 끌어올려야

안 CIO가 ‘자본시장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국민연금 CIO 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앞에 놓여있는 해결 과제는 수두룩하다. 기금본부가 전주로 둥지를 옮기면서 시작된 기금운용 전문가들의 퇴사 행렬을 막아야 할 뿐 아니라 지지부진한 투자 수익률도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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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운용직 퇴사자 수는 2013년 7명, 2014년 9명, 2015년 10명에서 전주로 기관 이전이 결정된 2016년 30명으로 급증했다. 2017년에도 27명이 국민연금을 떠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승희 의원(자유한국당)에 따르면 기금본부가 전주로 이전한 2017년 2월부터 올해 9월까지 퇴사한 기금운용직은 총 41명으로 집계됐다. 직급별로 보면 수석 7명, 선임 8명, 책임 11명, 전임 15명이 사표를 던졌다.

기금본부를 이끄는 CIO 자리도 전임 본부장인 강면욱씨가 지난해 7월 돌연 사표를 낸 후 이번에 안 CIO가 선임되기까지 무려 15개월간 비어있었다. 안 CIO는 부임하자마자 실무인력 공백을 수습하고, 주식운용실장·대체투자실장 등 수개월째 공석인 일부 핵심 보직의 적임자도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인력 이탈 하나만 해도 난제인데, 올해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수익률마저 바닥을 기고 있다는 점도 안 CIO가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이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국내외 주식·채권·대체투자 수익률 등이 포함된 기금운용 수익률은 평균 1.39%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연간 수익률인 7.26%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미·중 무역분쟁, 통화긴축, 신흥국 금융위기 등 대외 리스크가 부각된 데 따른 결과라고 해도 국민연금의 올해 성적표가 시장 평균을 밑도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령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수익률은 7월까지 -6.14%인데 이는 시장 대비 -0.69%포인트 낮은 수치다. 해외 주식 부문에서 7.38%의 무난한 수익을 거두긴 했지만 시장 평균은 7.45%로 국민연금을 웃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국민연금 기금본부는 CIO 공백의 영향으로 현상 유지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신임 CIO의 운용철학을 바탕으로 정체된 기금본부에 활력을 불어넣고, 투자 수익률을 유의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