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훈 이마트 바이어는 작년 11월 수산물박람회가 열리던 중국 청도로 날아갔다. '그린란드 헐리벗'(검정 가자미)을 찾기 위해서였다. 여러 업체 부스를 찾아다니다 대만 수산물 가공업체의 스테이크용 그린란드 헐리벗 상품을 발견했다. 두께가 2㎝ 정도라 살이 두툼하고, 성인 손바닥보다 커 스테이크용으로 제격이었다. 다른 업체 부스에는 노르웨이산 스테이크용 대구도 있었다. 심 바이어는 "살만 잘 썰어낸 200g짜리 스테이크용 생선 덩이를 들었더니 마치 소고기 한 덩이를 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린란드 헐리벗’(검정 가자미)으로 요리한 스테이크.

한국인의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연간 58.4㎏으로 세계 1위다. 작년 세계 평균(20.2㎏)의 3배에 육박한다. 찜이나 구이로만 먹던 생선을 이젠 스테이크로 먹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연어·가자미…생선도 스테이크 시대

그린란드 헐리벗은 아직 한국 소비자에겐 생소한 이름이다. 그러나 미국·유럽에서는 대구·연어와 함께 스테이크용 고급 수산물로 꼽힌다. 영미권에서는 '축일(haly)에 먹는 생선(butee)'이라는 뜻에서 헐리벗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몸길이 1m에 몸무게가 50㎏에 육박하는 대형 생선으로, 대서양의 서늘한 물에 서식한다. 심 바이어는 "바닷속에서 먹이를 찾느라 근육이 발달해 지방 함유량이 적고 살이 단단한 편"이라며 "주로 100~200g씩 잘라 냉동 포장해 유통된다"고 했다.

대표 탕거리인 대구를 스테이크로 먹는 소비자도 있다. 국내 탕거리 대구는 마리당 1㎏ 내외로 크기가 작다. 반면 마트에서 팔리는 노르웨이산 스테이크용 대구는 무게가 2~4㎏에 달한다. 이마트는 "노르웨이는 자국 200크로네짜리 지폐에 대구 그림을 그려 넣을 정도로 대구를 많이 먹고, 주로 스테이크로 요리해 먹는다"고 했다. 이마트는 지난 8월 그린란드 헐리벗 가공품 6.5t과 대구 스테이크 20t을 수입해 판매를 시작했다. 민어의 뼈를 제거해 평평하게 저며 스테이크로 먹는 '민어 필렛'도 있다.

작년 국내서 팔린 스테이크용 냉동 생선 제품 규모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올해 중순부터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마트가 관련 가정간편식(HMR)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유로모니터의 문경선 수석연구원은 "관련 상품이 속속 나오고 있어 전체 시장 규모는 이제부터 커질 것"이라고 했다.

스테이크용 생선의 대표 주자는 연어다. 지난해 이마트의 구이용 연어 매출은 2016년보다 35.7% 늘었다. 염이용 이마트 바이어는 "스테이크용 생선 1세대가 연어라면, 2세대는 가자미와 대구"라고 했다.

◇소비자 입맛 변화…늘어나는 수입 수산물

국내 스테이크용 생선은 대부분 해외에서 공수됐다. 연근해에서는 스테이크용으로 쓸 만한 대형 생선이 잡히지 않아서다. 변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대형마트들이 해외 각국으로 육류 수급 루트를 늘리던 것이, 이제는 수산물까지 확장되고 있다.

2008년 중국·일본 등 4개국이었던 이마트의 수산물 수입국은 작년 15개국으로 늘었다. 아랍에미리트·인도네시아산 갈치(2015년), 알래스카산 명태(2014년), 아르헨티나산 새우(2017년) 등이 추가됐다. 같은 기간 수입 수산물 매출 비중도 15%에서 34%로 뛰었다. 롯데마트에서 파는 고등어의 외국산 비중은 5년 만에 7.4%에서 40%까지 치솟았다. 이용호 롯데마트 수산 바이어는 "과거 국내 연안에서 쉽게 잡히던 갈치·고등어 같은 생선의 조업량이 일정치 않아 수입 수산물 공급 경로를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