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조합 설립 바람이 불고 있는 IT(정보기술)·게임업계가 사내 복지 제도를 잇따라 손보고 있다. 노조 설립 이후 혹시라도 벌어질 수 있는 노사 분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기업들이 서둘러 당근을 내놓는 것이다. 노조가 없는 카카오·넷마블도 어린이집 추가 신설이나 장기근속 휴가제 등을 도입하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크런치모드(장시간 일을 지속하는 업무 관행)로 불려온 업계의 근로 방식이 대폭 개선되는 전환점을 맞았다"면서도 "이러다 신속한 목표 달성, 업무 몰입과 같은 벤처 특유의 문화가 훼손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식지 않는 노조 설립 열풍···안랩도 노조 설립

IT·게임업계에서는 노조 설립 바람이 거세다.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 네이버와 게임업체 넥슨·스마일게이트에서 잇따라 노조가 생겨난 데 이어 지난달 국내 대표 보안업체인 안랩에도 창사 23년 만에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지난 1일 안랩 노조는 고용노동부에 설립 신고를 마치고 노조를 공식 출범했다. 지난달 안랩이 이사회 의결로 서비스사업부를 분할하자 일부 직원은 "회사 분할 과정에서 직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노조 설립으로 대응했다. 안랩 노조 관계자는 "분사는 직원들의 신분, 처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데도 직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근로 환경 개선, 복지 문제에 대해 사측과 적극 협상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카카오 판교오피스에 있는 직장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놀이 수업을 하고 있다. 카카오는 기존 제주도 본사, 판교오피스 어린이집에 이어 내년 3월 경기도 성남시 구미동에 세 번째 어린이집을 연다. 세 곳을 합하면 정원이 752명으로 국내 IT 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다.

인터넷 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K뱅크 내부에서도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은행에는 카카오와 KT 직원 상당수가 회사를 옮겨 일하고 있다. 일부 직원은 "회사 설립 초기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은데도 직원 수가 부족해 야근과 주말 근무가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전자결제 서비스업체 스마트로에도 노조가 설립됐다. 한 회사 관계자는 "판교 등지에 자리 잡은 IT·바이오 기업 3~4곳에서도 노조 설립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IT 벤처 기업의 경우 주 52시간 적용을 받지 않는 데다 근무 환경도 열악해 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많다"고 말했다.

서둘러 '당근' 내놓는 기업들

노조 설립 움직임이 거세자 기업들은 새로운 복지 대책을 내세우며 직원 달래기에 나섰다. 지난 4월 노조가 설립된 네이버는 노조 설립 한 달 만에 직원들이 건강검진일에 유급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또 지난달에는 네이버 본사 헬스케어센터 내에 직원 전용 병원도 새로 열었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이 위탁 운영하는 이 병원엔 가정의학과 교수 1명, 물리치료사 2명이 근무한다. 네이버 노조 관계자는 "근속 연수에 따라 특별휴가를 쓸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고 남성 직원에게도 출산 휴가를 최소 2주 보장해주는 방안을 회사 측에 요구했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지난달 초 세 번째 직장 어린이집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카카오 주요 계열사 임직원들이 다수 거주하는 경기도 성남시에 내년 3월 어린이집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카카오는 이미 제주도 본사와 판교 오피스에도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세 곳을 합하면 정원이 752명으로 국내 IT 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다. 게임업체 넷마블은 장기근속 휴가 제도를 손봤다. 기존엔 10년간 근무한 사원에게 황금열쇠 10돈과 휴가를 제공했는데 지금은 5·10·15·20년마다 휴가와 휴가 지원금 100만~1000만원을 주고 있다. 또 임직원 전용 보건소도 새로 설치했다.

업계에서는 기업들이 노조 설립과는 별개로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복지제도를 확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벤처업계에 부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바람이 벤처 특유의 역동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측에 요구 조건을 전달할 수 있는 공식 소통 창구를 만든다는 점에서 노조 설립은 긍정적이라고 본다"면서도 "다만 노조가 회사의 생존이나 성장에 방해되는 방식으로 활동을 하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