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물가에 대한 한국은행의 기존 전망이 다소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물가가 목표 수준에 점차 근접해나간다는 판단이 선다면 금융 안정을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과 미국 금리 격차 확대와 급증하는 가계부채 증가세 등 우리 경제의 금융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다시 언급하면서 조만간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 총재는 지난 5일 인천 연수원에서 열린 기자단 워크숍에서 "통화정책방향과 관련해 경기·물가 등 거시경제 상황과 금융 불균형 누적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게 기본 입장"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은이 이달 발표하는 수정 경제전망에서 성장률과 물가 전망을 하향 조정하더라도 금융 안정을 고려해 올해 내 한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올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의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는 10월과 11월 두 차례 남았다.

다만 10월보다 11월 인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이달 발표되는 한은의 수정 경제전망에서 성장과 물가 전망 하향 조정은 확실하지만 성장세가 잠재 수준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어 11월 인상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이 총재는 "8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금융 완화 정도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고 저도 그 이후 언급을 하면서 금리 인상 시점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리 조정 여부와 그 시기는 곧 나올 경제전망, 그리고 그 시점에서 대내외 불확실성 요인의 정도, 금융안정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최근 정부와 여당에서 부동산 시장 과열 대책의 일환으로 금리 인상 필요성이 언급되는 상황에 대해 "외부 의견을 너무 의식해 금리 인상이 필요한데도 인상을 하지 않는다든가 아니면 인상이 적절치 않은데도 인상하는 결정은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통위는 본연의 책무에 충실하게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통위가 조만간 금리 인상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금통위의 독립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지 정부 압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주열 총재는 통화정책방향과 관련해 “경기·물가 등 거시경제 상황과 금융 불균형 누적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총재는 이날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주목하는 불확실성 요인을 네 가지로 언급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대표되는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변화 △국내 가계부채 증가세 △글로벌 무역분쟁 △ 고용부진 등이다. 네 가지 요인 중 먼저 언급된 두 가지는 우리 경제의 금융 안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한은은 미 금리 인상에 따른 내외 금리차 확대와 이에 따른 자본 유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의 대외건전성이 양호하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국내에서 당장 큰 폭의 외국인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지만 한미 금리 격차가 계속 확대될수록 자본유출 압력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더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유출과 관련해 어느 지점이 감내할 만한지 이론적으로는 여러 가지 수준을 도출할 수 있지만, 이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책은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소득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가계부채 증가세도 경계해야 하는 요인이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증가세와 경제주체의 위험자산 선호 등 몇 가지 지표를 짚어보면 금융 불균형이 쌓여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가계부채 문제가 당장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소득보다 빠른 속도의 증가세가 계속 이어지면 금융안정을 저해하는 위협요인으로 발전할 수 있어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심화되는 글로벌 무역분쟁과 부진한 국내 고용 상황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국내 경제의 성장경로를 불확실하게 하는 글로벌 무역분쟁에 대해서는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경제 외적 요인도 함께 작용하고 있어 전개 방향과 그 영향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고, "국내 고용부진은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요인, 일부 업종의 업황 부진 등 복합적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에 단기간 크게 개선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이 총재는 한은의 ‘책임론’으로 번지는 주택 가격 급등세와 관련해 "주택가격 상승에는 저금리 등 완화적인 금융여건이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 서울 등 일부 지역 주택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은 수급 불균형과 개발계획발표에 따른 가격 상승 기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어느 요인이 주된 요인이냐는 논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통화정책은 총 수요에 영향을 줘서 경기를 조절하는 거시경제정책이기 때문에 통화정책만으로 금융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는 한계가 있다"며 "주택시장을 포함한 금융안정 문제는 거시건전성정책과 주택·조세·소득정책을 병행해 운용할 때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