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시대]

올들어 ‘물컵 갑질 사건(대한항공)’과 ‘기내식 사태(아시아나항공)’로 몸살을 앓았던 국내 항공업계가 최근 국제유가 상승 등 대외 악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항공 여객기와 승무원들

항공사들은 지난 2014년 이후 약 4년간 유가가 약세를 보이면서 꾸준한 실적 개선 흐름을 이어왔다. 여기에 미국, 일본, 유럽 등의 통화정책 완화로 글로벌 경기가 점차 호전된 점도 항공사들의 호황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최근 유가가 빠른 속도로 상승해 항공유 수입 부담이 크게 늘고 항공화물을 이용하는 주요 업종의 경기도 둔화되는 신호가 감지되면서 다시 실적 악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1년만에 50% 뛴 국제유가…항공사, 실적 악화 전망 잇따라

지난 1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날보다 3% 오른 배럴당 75.4달러로 마감했다. 배럴당 50달러 안팎에 거래됐던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년만에 약 50% 오른 수치다.

2014년 상반기까지 배럴당 100달러 넘는 가격에 거래됐던 WTI는 미국 셰일오일 생산량 증가와 주요 산유국들의 증산(增産)으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 2016년 초 배럴당 20달러 중반까지 하락한 WTI 가격은 점차 반등했지만, 올 초까지 배럴당 50달러선을 유지하며 안정된 흐름을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 원유 수요 증가와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등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의 흐름은 항공유 수입 비중이 큰 항공사들의 손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최근 유가 급등으로 금융시장과 항공업계에서는 국제선 비중이 큰 주요 항공사들의 실적이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로 국제유가의 상승과 함께 항공유의 가격도 최근 큰 폭의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주요 항공유 중 하나인 제트연료의 가격은 지난달 배럴당 96.2달러로 마감, 최근 1년만에 32.2% 상승했다. 최근 한 달간 상승률도 5.3%에 이른다. 최근 제트연료의 가격은 국제유가 하락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직전인 2014년 9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2011년 9월 이후 제트연료(푸른색)와 브렌트유(붉은색) 가격 추이

대신증권은 유가가 10% 상승할 경우 항공사별 유류비 증가금액은 대한항공이 2604억원, 아시아나항공은 1437억원, 제주항공은 218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이를 토대로 지난달 항공산업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제시했다. 케이프투자증권도 유가 상승에 따른 연료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대한항공의 목표주가를 10%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신민석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한항공의 경우 유가 급등으로 연료비가 전년대비 32.7% 증가한 8751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유류할증료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단거리노선의 티켓 가격 부담도 가중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 경기둔화 신호에 화물수요 감소 예상도

문제는 국제유가가 앞으로 더 빠르게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이란 원유 수출 봉쇄가 지속되고 최근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 등과 무역협정을 타결해 수요 감소에 대한 우려도 줄어들면서 유가 상승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제유가가 올해 안에 배럴당 9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의 원유 중개회사 PVM 오일어소시에이츠는 이란 원유 공급 감소에도 불구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 여부가 불투명하다며,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항공화물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업종에서 최근 경기둔화 신호음이 나오고 있는 점도 항공사 실적둔화 전망의 이유로 꼽힌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D램을 포함한 반도체 수요가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미국과 중국간 무역분쟁 등으로 인해 전체적인 글로벌 경기전망이 밝지 않다"며 "항공업계가 당분간 유가상승과 환율불안, 경기둔화의 ‘3중고’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