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28일 서울 서초구 강철수 공인중개사무소에 신반포2차 전용 85㎡ 아파트를 문의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보유세도 올랐는데 혹시 5000만원 정도라도 싸게 나온 매물 없느냐"고 재차 물었다. 하지만 매물은 아예 없다. 사무소 대표는 "집주인들이 양도세에 대한 우려로 대부분 집 팔 생각이 없다"며 "보유세를 좀 더 올리더라도 거래세는 낮춰야 시장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물은 적고 전세·월세만 가득 - 28일 오후 서울 잠원동의 한 부동산 앞. 매물 게시판엔 전·월세 정보가 대부분이고 매매 정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서초구의 한 공인중개사는“9·13 대책 발표 후 집을 보겠다는 손님은 있어도 내놓겠다는 손님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정부가 다주택자를 겨냥, 종부세 등 보유세 인상 방침을 밝혔지만 양도세 등 각종 거래 비용 부담 탓에 거래량이 급감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이달 1~13일 서울 아파트 계약 건수는 하루 평균 112.5건이었지만, 9·13 대책 발표 후인 14~26일에는 일평균 거래 건수가 10건도 안 된다. 주택 매매는 계약 이후 60일 이내에만 신고하면 되기 때문에 이 기간 계약 건수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거래 절벽'은 더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마포구 A공인중개사는 "4월 이후 매물 부족 상태에서 '아니면 말고'식으로 가격을 높인 매물이 팔리고, 다음 가격은 더 오르는 기본 구조는 대책 발표에도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왜 그럴까. 서울 강남·서초구에 아파트 한 채씩을 가진 김모(52)씨는 9·13 부동산 대책으로 보유세 부담이 약 1000만원 늘어나지만, 집을 팔 생각이 전혀 없다. 김씨가 2016년 12억원에 산 서초구 아파트의 현 시세는 약 19억원. 지금 팔면 7억원의 차익이 생기지만 양도세로 3억원 이상을 내야 한다. 김씨는 "1000만원 아깝다고 3억원을 손해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정권에 따라 주택 정책이 바뀌는 만큼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중개수수료도 매물 부족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규정상 거래 가격이 9억원 이상이면 수수료를 0.9%까지 받을 수 있다. 10억원짜리 아파트를 팔고 같은 가격 아파트를 사면 중개수수료만 1800만원이 든다. 서울 아파트값 평균이 7억원을 돌파하면서 중개수수료가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지난달 서울 마포구의 아파트(전용 84㎡)를 13억원에 팔고 서초구 아파트(전용 84㎡)를 18억원에 산 박모(55)씨는 부동산 중개수수료로 각각 1000만원·1600만원을 냈다. 현행 부동산 중개수수료율(서울 기준)은 9억원 이상의 아파트를 고가(高價) 주택으로 분류해 중개인이 거래 대금의 0.9%까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박씨는 "그나마 마포 아파트 매도할 때 중개료를 깎아서 이 정도"라며 "서울 집값이 급등했는데도 과거에 만들어진 중개수수료 기준이 적용되다 보니 '복비 폭탄'을 맞았다"고 했다.

중개수수료 증가 폭이 집값 상승 폭의 2~4배에 달하는 것은 주택 거래 가격이 높을수록 중개 수수료율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서울의 주택 중개보수요율은 매매의 경우 6억~9억 미만은 0.5%, 9억원 이상은 0.9%를 상한으로 정하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8월 서울 한강 이남 11개구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중간 매매가격)은 9억8844만원이다. 2015년에 만든 중개보수요율을 따를 경우 서울 아파트 상당수가 고가 아파트로 분류돼 고율의 중개수수료를 내야 한다. 박씨는 "8억원의 집을 사면 400만원의 중개수수료를 내지만, 16억원의 집을 사려면 1440만원을 내야 하는 셈"이라며 "서울에서 주택 거래하면 중형차 한 대 값을 복비로 내야하는데 가급적이면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집 팔고 양도세 내는 것이 종부세 내는 것보다 부담 커

전문가들은 "다주택자의 부동산 보유세(종부세)와 거래세(양도세)를 동시에 올렸기 때문에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아 집값을 낮추는 당초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부동산 보유세 인상을 추진하는 명분은 '국내 부동산 보유세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보다 낮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은 0.16%로 조사 대상 13개국 평균인 0.33%의 절반 수준이다. 문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양도세 부담이 그대로라는 데 있다. OECD에 따르면 'GDP(국내총생산) 대비 개인 양도세' 비율은 한국이 0.8%로 스웨덴(1.7%), 미국(0.9%)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한국의 취득세율은 4%로 미국(1%)은 물론 캐나다 (1.3%), 영국(2%), 프랑스(2.5%), 독일(3.5%)보다 높다.

그나마도 이는 양도세 중과(重課)가 없던 2016년 기준이다. 올해 4월부터 국내 다주택자는 주택을 매도할 경우 시세 차익의 최대 62%를 양도세로, 6.2%를 지방세로 내야 한다.

외국은 어떨까. 국세청 조사로는 미국 양도세 최고 세율은 37%다. 이 세율도 취득 1년 이내에 처분하는 경우에 적용되며 1년 이상 보유하면 20%로 낮아진다. 다주택자라고 세율이 중과되지는 않는다. 프랑스도 부동산의 양도소득에 적용되는 세율은 19%이며 사회분담세 등 다른 명목으로 12.3%가 추가돼 실질적으로 30%대 초반이다. 취득 후 15년이 지나면 과세하지 않는다.

◇ "다주택자 퇴로 확보가 현실적 해법"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물 부족 현상에도 서울 집값은 요지부동이다. 한국감정원은 지난 24일 조사 기준 서울의 주간 아파트값이 전주 대비 0.1% 올랐다고 28일 밝혔다.

한 주 전(17일 기준) 0.26%보다 상승 폭은 둔화됐지만, 대책 발표와 동시에 집값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던 작년 8·2 대책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거래량이 10분의 1로 줄었음에도 가격이 내리지 않은 것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부담을 낮춰 거래량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보유세를 높이는 대신 거래세를 낮춰야 다주택자들이 매도에 나설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 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9·13 대책 후 종합부동산세가 인상돼 양도세 등 각종 거래 비용 부담만 줄여줘도 매도를 결정하는 다주택자가 생겨날 것"이라며 "이들이 집을 팔아 공급이 늘어야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