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 D28-1연구용지. 마곡역과 LG사이언스파크 사이에 자리 잡은 부지에서는 냉난방 기기 전문기업 귀뚜라미가 짓는 '마곡 귀뚜라미 연구센터'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하 3층, 지상 11층 규모 'L'자 형태 건물은 파란색 안전망으로 전체를 둘러싼 채 인부들이 분주히 오가며 외장재 부착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귀뚜라미그룹은 공사가 끝나는 올 12월부터 경북 청도, 충남 아산, 인천에 흩어져 있는 귀뚜라미·귀뚜라미범양냉방·센추리 등 5개 계열사 연구·개발(R&D) 인력 300명을 마곡 R&D센터로 모을 예정이다. 이 회사 김영상 팀장은 "새 연구소 설립과 함께 R&D 인력 규모를 2025년까지 50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지방에서 올라오는 인력들을 위해 사택용 오피스텔과 아파트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26일 서울 강서구 마곡역 인근에서 촬영한 마곡산업단지 전경. 마곡산단 랜드마크인 LG사이언스파크와 코오롱원앤온리타워 등 신축 빌딩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 아래쪽 LG사이언스파크와 마곡역 사이 부지에서는 마곡 귀뚜라미 연구센터 공사가 한창이다.

마곡산업단지가 새로운 R&D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LG그룹·코오롱·롯데그룹 등 대기업 연구소가 자리 잡은 데 이어 올 연말부터는 중소·중견기업의 입주가 본격화된다. 바이오 벤처기업들도 마곡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1년 전만 해도 레미콘과 덤프트럭 같은 공사 차량만 드문드문 오가던 도로는 이제 기업 연구소를 찾는 차들로 붐볐다.

◇대기업 이어 중견·중소 속속 입주

마곡산단은 서울시가 실리콘밸리를 본떠 조성한 융·복합 산업단지다. 전체 부지는 축구장 100개에 이르는 81만1111㎡(약 24만5790평)에 이른다. 판교테크노밸리(66만1000㎡)보다 큰 규모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6년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입주한 기업은 모두 49개사에 이른다. 연말까지 중소·중견기업 19개사의 R&D센터가 문을 열고 내년에도 29개 기업이 입주한다. 김윤규 서울시 서남권사업과장은 "대기업 연구소가 먼저 들어와 기반을 닦은 다음 중소·중견기업이 이어 입주해 저변을 넓히도록 계획을 세웠다"며 "예정했던 149개사가 모두 입주하면 신규 일자리 5만~6만개를 포함해 마곡산단 고용 규모가 1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중견·중소기업 중에서는 귀뚜라미에 이어 경남 양산에 본사를 둔 넥센타이어도 내년 상반기 마곡산단에 지하 2층, 지상 8층 규모의 중앙연구소를 연다. 중앙연구소에서 양산·창녕 연구소와 미국·중국·독일·체코 등 해외 연구소를 통합 관리할 예정이다. 이재엽 경영관리팀 부장은 "중앙연구소 설립을 계기로 현재 450명 정도인 R&D 인력 규모를 1000명 이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북 구미에 있는 도레이첨단소재, 충북 음성 일진다이아몬드도 차례로 입주할 예정이다.

최근 R&D 인력 채용을 확대하고 있는 바이오·제약 분야에서는 국내 대학벤처 1호인 바이로메드가 서울대 내에 있는 연구 시설을 내년 말 마곡으로 옮기기 위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게보린'으로 유명한 삼진제약은 판교에 있는 연구소를 마곡으로 확장 이전할 방침이다. 화장품 R&D 업체인 에스디생명공학도 내년 7월 입주를 목표로 지하 3층, 지상 10층 규모 연구소를 건설하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판교가 포화된 상황에서 교통과 주거 등 연구 여건을 보면 마곡이 최적지"라고 말했다.

◇하루하루가 상전벽해

마곡산단이 있는 마곡동 일대는 10여 년 전만 해도 논밭이 대부분이었다. 1996년 지하철 5호선 개통과 함께 세워진 마곡역은 교통 수요가 없어 2008년까지 12년 동안 무정차 역으로 있었다. 하지만 2014년 1만 가구가 넘는 아파트 단지인 '엠밸리'가 입주를 시작하고 기업들도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이 지역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를 겪고 있다. 마곡유명공인중개사 표현미 대표는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도 유동인구가 두 배 이상 늘었다"며 "오피스텔은 만실이 된 지 오래다"고 했다. 2016년 말 5억원대에 거래됐던 마곡역 인근 마곡엠밸리12단지 119㎡형(36평형) 아파트의 실거래 가격은 2배로 치솟았다.

서울시가 강소기업 전용 R&D 공간을 추가로 마련하기로 하면서 마곡 개발은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 4월 남아 있는 10만㎡가량을 활용해 강소기업 1000여 개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신창호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도시공학)는 "마곡산단은 IT뿐 아니라 BT·NT(나노기술)·ET(에너지기술) 등 다양한 첨단 분야에서 기업들을 유치하고,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문턱을 없앤 것이 특징"이라며 "각종 산업이 융복합되는 최근 흐름에 잘 맞아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