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55)씨는 이번 추석 때 "월급이 기대보다 너무 적어 얼마 전 회사를 그만뒀다"는 아들(28)의 말을 듣고 실망했다. 김씨가 "애초에 왜 지원했느냐?"고 핀잔을 줬지만, 아들은 생각이 분명했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 채용 공고에 '임금은 내규에 따른다'는 문구가 있었어요. 출근 첫날부터 월급 얘기를 한 마디도 못 듣다가, 보름간 현장실습을 마친 뒤에야 월급을 알게 됐어요. 원하는 것보다 너무 낮았어요."

애써 직장 들어가고도 연봉에 실망해 곧 그만두는 젊은이들이 많다. 취업 준비생들은 구인·구직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많은 시간을 쓰지만, '초봉 3000만원' 같은 식으로 급여를 속 시원히 밝힌 공고는 많지 않다. '임금은 회사 내규에 따름', '협의 후 결정' 같은 문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애매한 공고를 보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6월 '구직자의 선택권과 알 권리 보장을 위해, 기업이 사람을 뽑을 때 급여 수준이 얼마인지 구직자에게 반드시 알리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고용부에 권고했다. 고용부는 내년 상반기 법안 제출을 목표로 연구 용역 등을 진행 중이다. 문제는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찮다는 점이다.

"평생 다닐 직장, 연봉도 모르고 입사?"

지난 4월 국민권익위가 취업 준비생 2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응답자 네 명에 세 명꼴(76%)로 "임금이 안 적힌 취업 공고를 본 적 있다"고 했다. 대기업은 그나마 연봉이 대략 알려져 있지만, 중소기업은 깜깜이 공고가 많다. 구직자가 취업 사이트를 뒤지거나, 그 회사 직원을 수소문하는 수밖에 없다. 취준생이 "마트에서 장 볼 때도 가격 보고 고르는데, 임금도 모르고 직장을 택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하는 이유다.

최근 중소기업에 들어간 최모(27)씨는 "나도 입사 전 지금 다니는 회사의 월급을 몰라 지인들 통해 간신히 알았다"며 "내가 취업했다는 소문이 나자, 초봉이 얼마인지를 묻는 후배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서울의 한 사립대는 아예 졸업생들 직장을 조사해놓고, 임금 수준이 궁금한 재학생 후배들과 연결해주고 있다.

기업들 "사람 따라 연봉 다른데…"

하지만 재계에선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 정보를 공개하라고 국가가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주요 회원국 중에 임금 공개를 법으로 의무화한 나라는 많지 않다. 미국·일본도 안 한다. 성별·인종별 차별 금지를 명시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같은 자리라도 사람에 따라 실력이 천차만별인데, 일률적으로 연봉을 공개하는 건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경력자가 그렇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회계 담당자가 처음엔 '4000만원쯤 줘야지'라고 생각했다 해도, 이력과 평판이 뛰어난 지원자에겐 5000만원도 안 아까울 수 있다"고 했다. 요즘은 대규모 신입사원 공채보다 맞춤형 경력자 채용 방식이 늘어나는 추세다.

연봉이 공개되면 안 그래도 구인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이 더 곤란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지금은 연봉을 모르고 찾아온 구직자에게 "당장은 적어도 같이 키워가자"는 식으로 설득할 수 있지만, 연봉이 공개되면 그마저 끊길 수 있다. 일부 중소기업 관계자는 "자칫하면 회사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신입사원 임금 올려줘야 할 판"이라고 했다.

고심하는 정부

이처럼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는 사안이라, 정부도 '신입사원 연봉은 3420만원'처럼 구체적인 액수를 공개하는 방안은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신 '3000만원 이상'처럼 임금 하한선을 제시하거나 '3000만~3500만원'처럼 구간으로 제시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구직자와 기업들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킬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