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1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런던패션위크(London Fashion Week)’에서 업계의 이목은 버버리에 집중됐다. 영국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지난해 최고경영자(CEO)를 새로 바꾼데 이어 총괄 디자이너(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새로 선임하면서 변신을 예고했기 때문.

버버리를 17년간 이끌어온 크리스토퍼 베일리 전 CEO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지난해 사임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버버리도 새출발을 알렸다. 베일리 전 CEO는 버버리만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확립하고 버버리의 성장을 이끌어온 주역으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해 6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 감소하면서 버버리 내부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20년 만에 바뀐 버버리 새 로고

지난해 6월 선임된 이탈리아 출신 마르코 고베티(Gobbetti·58) 버버리 신임 CEO는 버버리를 프랑스의 루이뷔통이나 에르메스, 이탈리아의 구찌와 견줄 만한 최고급 명품으로 키워내라는 임무를 맡았다. 버버리 경영진은 이 과제를 수행할 적임자로 이탈리아 출신의 리카르도 티시(Tisci·44)를 올해 3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티시는 패션 업계에서 ‘브랜드에 생명을 불어넣는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지난 12년간 프랑스 명품 브랜드 지방시(Givenchy)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내면서 브랜드 매출을 6배 이상 키워냈다. 외신은 "영국인이 진두지휘하던 버버리를 2명의 이탈리아인이 넘겨받았다"고 전했다.

지난 13일 인스타그램과 위챗을 통해서 공개된 버버리의 첫 드랍 ‘B 시리즈’. 버버리 로고가 박힌 티셔츠 등을 소량으로 판매했다. 티셔츠 가격은 400달러.

티시는 부임 5개월 만에 버버리 로고부터 바꿨다. 말에 올라탄 기사의 모습을 한 전통적인 로고에서 버버리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의 앞글자를 딴 알파벳 T와 B를 결합한 주황색 로고로 대체했다.

버버리 경영진은 새 로고와 함께 마케팅 전략에도 변화를 줬다. 최근에는 첫 ‘드랍(drop)’을 발표하면서 새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선보였다. 드랍이란 소량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뜻한다.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예고없이 갑자기 판매 계획을 알린다. 슈프림(Supreme) 등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가 희소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판매 기법이다. 줄리 브라운 버버리 최고재무책임자는 "이런류의 ‘깜짝 드랍’이 앞으로 버버리의 전략의 필수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외신은 "버버리가 베일리 전 CEO 아래 디지털화에 앞장선 데 이어 이제는 10~20대 젊은층 사이에서 영향력이 큰 드랍 판매 방식을 도입하는 등 본격 젊은층 공략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디자인도 젊어졌다. 티시는 17일(현지시각) ‘왕국(Kingdom)’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인 첫 버버리 패션쇼에서 본인의 강점인 스트리트(길거리) 패션을 기존 버버리 트렌치코트에 접목했다. 런웨이에는 운동화를 신고 후드티에 변형된 버버리 코트를 입은 남성 모델들이 걸어나왔다.

지난 1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버버리 패션쇼에는 운동화를 신은 남성 모델들이 등장했다.

패션쇼 전반부는 버버리만의 특색을 살린 디자인의 정장과 트렌치코트를 티시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의상으로 구성됐고, 후반부에는 최근 유행하는 젊은 스트리트 패션을 강조한 의상이 잇따라 등장했다. 전자는 기존 버버리 고객의 기호를 맞추고 후자는 젊은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지난 1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버버리 패션쇼에서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는 기존의 점잖은 버버리와 리카르도 티시가 재해석한 젊은 버버리를 동시에 선보였다.

새 버버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패션 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성공적인 재단장"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지 더인디펜던트는 "버버리는 패션쇼에서 선보인 의류 일부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24시간 동안 판매했는데 슈프림 못지 않은 호응을 얻어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버버리그룹 주가는 오히려 패션쇼 직후 떨어졌다. 지난 14일 주당 2153파운드에 거래되던 주가는 20일 1977파운드에 하락 마감했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JP모건은 "리카드로 티시의 버버리는 클래식한 기존 버버리를 수용하는 동시에 새로운 소비층을 공략하려다 보니 전략이 집중되지 않고 분산되는 느낌"이라고 진단했다.

마르코 고베티 버버리 CEO는 "버버리의 변신은 이제 시작"이라면서 "브랜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추진 중인 일련의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