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신재생에너지 등 차세대 산업이 떠오르면서 소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전통적 산업 금속인 철, 구리 뿐 아니라 금, 은 등 귀금속부터 리튬, 코발트, 망간, 니켈, 텅스텐 등 희유금속까지 금속 자원의 산업적 가치가 높아졌다. 금속 자원 확보가 산업 육성과 기술 고도화의 전제조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산업 경쟁력 열쇠’인 금속을 다루고 있는 국내 기업들을 재조명한다. [편집자주]

지난 7월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국가산업공단에 위치한 LS니꼬동제련 온산제련소. 39도를 넘나드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졌지만, LS니꼬동제련 제련공장은 바깥날씨가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질 만큼 뜨거웠다. 동(銅‧구리)정광을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제련공장 내부 온도는 1250도에 달하는 구리쇳물의 열기가 가득 했다.

LS니꼬동제련은 동광석(구리가 든 광석)을 정제한 동정광(순도를 높인 동광석)을 수입해 제련(smeling·광석을 용광로에 넣고 녹여서 금속을 분리·추출해 정제하는 작업)으로 전기동을 생산하는 국내 유일업체다. 동정광은 구리 함량이 20~30%인데, 제련 과정을 거치면 순도 99.95%의 정제조동(불순물을 걸러낸 동)이 된다. LS니꼬동제련은 자용로공법과 미츠비시연속공법 두 가지 제련방법을 통해 1250도에 가까운 고열로 광석을 녹여 구리를 추출한다.

제련이 끝난 정제조동을 다시 황산용액이 담긴 수조에 넣고 전류를 흘리면 이온화되면서 미리 담가둔 금속판에 동 성분만 달라붙는다. 이 과정을 전해정련(전기분해로 금속 순도를 높이는 공정)이라고 한다. 전해정련을 거친 전기동은 순도 99.99%가 된다. 순도가 높은 전기동은 전도성이 뛰어나 전기, 전자, 통신, 자동차, 항공우주 등 첨단산업 주요 소재로 사용된다.

전 세계 동 수요는 연간 3000만t, 금액으로는 약 200조원이다. 전 세계에서 동정광으로 생산하는 전기동이 2300만t, 재활용하는 물량이 600만t인데 t당 6000달러 수준에서 거래되는 규모다. LS니꼬동제련이 생산하는 전기동 생산능력은 연간 68만5000t 수준이다.

LS니꼬동제련 울산 온산제련소 제련공장 주조공정

◇ 자원 없어도 제련‧가공 경쟁력 갖춰…첨단산업 발달할수록 구리 사용량 많아

한국은 비철금속(철 이외의 금속) 자원빈국이어서 동광석을 해외에서 전량 수입한다. 하지만 구리 제련과 가공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LS니꼬동제련, 풍산(103140)과 같은 업체들이 있어 구리를 쓰는 기업들은 안정적으로 공급 받고 있다. 풍산은 구리판, 구리관, 소전(동전 재료), 탄약 등을 생산하는 신동(동합금을 산업소재로 가공)업체다.

전기동 사용량은 첨단산업이 발달할수록 늘어난다. 한국은 중국,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전기동 생산량 세계 5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전기동 수요는 연간 약 102만t으로 65만t은 국내에서 생산하고 나머지 37만t은 칠레, 잠비아, 필리핀 등에서 수입한다. 국내 생산량 65만t 중 96.6%(62만3000t)를 LS니꼬동제련이 만들고, 나머지 3.4%(2만2000t)를 고려아연(010130)이 아연 부산물에서 생산한다.

LS니꼬동제련의 역사는 1936년 국내 최초 근대화 산업시설인 장항제련소에서 시작됐다. 광복 이후 한국광업제련공사를 거쳐 1982년 럭키그룹(현 LG그룹)에 편입됐다. 1999년 일본 니꼬(Nikko) 금속이 주축이 된 JKJS(Japan Korea Joint Smelting) 컨소시엄과의 합자를 통해 LG니꼬동제련이 됐고, 2005년 LS그룹 출범으로 LS니꼬동제련이 됐다.

LS니꼬동제력은 지난 11일 페루 광물기업 민수르와 56만t 규모의 동광석 공급 계약을 체결해 최근 안정적인 원료 확보에 성공했다. 페루 미나 후스타 광산에서 생산된 고품위(40%) 동정광을 2021년부터 2030년까지 매년 5만~6만t씩 공급 받게 된다. LS니꼬동제련은 56만t 규모 동정광에서 전기동 1조5000억원, 귀금속과 희소금속 등 부가금속 3000억원 규모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LS니꼬동제련 온산제련소 전경

◇ 전자‧전기‧자동차 등 첨단산업 발전할수록 전기동 사용량 늘어

구리는 전기와 열을 전달하는 성질인 전도성(傳導性)이 높다. 은(銀)은 구리보다 전도성이 높지만, 가격이 90배 비싸기 때문에 주로 구리가 사용된다. 또 구리는 철보다 비싼 금속이다. 전기분해를 거친 고순도 구리인 전기동판은 1t당 924만원으로, 같은 무게인 철판(1t당 75만원)보다 12배 비싸다.

전기동은 열과 전기전도율이 높다. 또 내식성이 강하고 용융점(고체가 액체로 바뀌는 온도)이 낮으며 합금에 용이하다는 특성 때문에 다양한 산업에서 기초소재로 쓰인다. 구리는 전선, 건축, 전자, 전기, 통신, 항공우주, 자동차, 조선, 의료, 예술 등 활용분야가 방대한 금속이다. 구리는 60%가 전력선, 통신선 등 전선에 쓰인다. 나머지 40%가 송수관‧배관 등 동파이프, 총포탄피 등 군수물자, 전자‧항공우주‧자동차 등 첨단산업이나 화폐, 예술품, 의료용 금속 등으로 활용된다.

동전도 동으로 만든다. 동에 니켈을 혼합한 백동은 500원, 100원, 50원 주화에 사용된다. 현재 쓰고 있는 10원짜리 주화는 알루미늄에 동을 코팅한 것이지만, 2006년 이전에는 무게 4.06g의 동과 아연으로 만들었다. 10원 동전을 만드는데 재료비만 14원이 들었다. 동 가격이 오르면서 동전을 녹여 거래하는 경우가 늘자 소재를 바꾼 것이다.

순수한 동이나 동 함유율이 65% 이상인 합금은 살균력이 좋아 항균동(Antimicrobial Copper)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항균동은 감염을 유발하는 박테리아를 2시간 안에 99.9% 이상 박멸한다. 2010년 국제구리협회, LS니꼬동제련, 풍산, 아산병원 등이 2년 간 임상실험을 한 결과 항균동으로 만든 침대 가드레인, 세면대, 문고리, 손잡이 등이 병원 내 2차 감염을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동

◇ 전기차 시대 주목하는 금속…스마트팩토리‧동합금 어망에도 기대

금속업계는 전기차를 새로운 시장으로 보고 있다. 우선 전기차 심장 역할을 하는 배터리에서 리튬, 코발트, 망간 등 희소금속이 핵심 소재 역할을 한다. 전기차 산업 발전과 함께 차량 경량화도 이뤄지고 있는데, 철보다 가벼운 알루미늄이 떠오르고 있다. 구리도 전기차 시장의 성장으로 각광받는 소재 중 하나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보다 더 많은 배선이 필요하기 때문에 구리 수요가 높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구리는 약 80㎏로 내연기관 차량(20㎏)이나 하이브리드차량(40㎏)보다 많다. 국제구리협회(ICA)에 따르면 전기차 1대에 들어가는 구리선은 최대 6㎞다. ICA는 2027년까지 56만t 규모의 구리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 전기차 충전소가 늘어날수록 구리 수요도 함께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구리업계는 4차 산업혁명으로 스마트팩토리가 활성화되면 구리 수요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마트팩토리를 위해 모든 생산 공정을 무인자동화 하는 과정에서 센서, 카메라, 데이터 장비를 설치하는데 구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설비가 무선으로 연결될 경우 전선에 쓰이는 구리 수요는 줄어들 수도 있다.

LS니꼬동제련은 동합금 어망 보급도 추진 중이다. 동합금 어망에는 수중식물이 부착되지 않아 청결하고,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양식어류가 자랄 수 있어 사료 효율이 높다. 최근 외해양식에 성공한데 이어 연근해 양식으로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시험을 진행 중이다.

골드바

◇ 부산물에서 금‧은‧백금 등 뽑아내…반도체‧태양전지 등에 활용

LS니꼬동제련은 전기동을 만들기 위한 전련과정에서 금, 은, 백금 등 귀금속과 셀레늄, 텔루륨 등 희소금속도 생산한다. 전련과정에서 여과된 정제조동의 불순물이 점액질 형태로 침전되는데, 이를 슬라임(anode slime)이라고 한다. 부산물인 슬라임을 가열하고 전류를 공급하는 전련과정을 반복하면서 은, 금, 백금 등을 순차적으로 추출하는 것이다.

LS니꼬동제련은 국내 최대 금(金) 생산업체 중 하나다. 매년 순도 99.99%인 금 60t을 생산한다. 국내 업체 중 유일하게 세계 최대 금거래 시장인 런던금시장연합회(LBMA)의 인수도적격금 생산업체(Good Delivery List)에 등록됐다. 금은 연성(가늘고 넓게 늘어나는 특성)이 좋아 금 1g으로 금실 3000m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 본딩 와이어 등 산업용 소재로도 쓰인다.

본딩 와이어는 인쇄회로기판(PCB)과 반도체 장치를 연결하거나 반도체끼리 연결할 때 쓰는 장치다. 본딩 와이어는 반도체 정밀 회로를 연결해 신호를 주고받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전도율이 높은 금을 사용한다. 금이 비싸지면서 대체재인 구리 본딩 와이어가 부각되기도 했지만, 최근 사물인터넷(IoT) 등에 쓰이는 반도체는 신호를 빨리 주고받아야 해 전도가 가장 좋은 금을 사용한다.

은(銀)도 연간 1200t을 생산한다. 은은 모든 금속 중에서 열 전도성과 전기 전도성이 가장 뛰어나 쓰임새가 다양하다. 예전에는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에 많이 사용됐지만, 최근에는 주로 태양전지 전극소재로 활용된다. 태양 빛에너지로 발생한 전자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PV 페이스트의 주재료가 은이다. 금은 비싸고, 구리는 부식할 수 있기 때문에 주로 은을 쓴다.

LS니꼬동제련은 금, 은 말고도 백금, 팔라듐, 셀레늄, 텔루늄, 레늄, 조황산니켈 등 다양한 금속을 생산한다. 백금과 팔라듐은 주로 자동차 배기가스 촉매제로 이용한다. 셀레륨은 유리 착색제‧안료(색소, 물감재료), 텔루륨은 자동차 온열‧냉각시트나 와인셀러 등에 활용된다.

이동수 LS니꼬동제련 영업부문장(상무)은 "동 시장은 인도와 동남아 시장의 급속한 성장과 전기차 수요가 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구리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향후 리싸이클링(recycling)을 통한 원료 공급 확대와 새로운 수요 창출, 원가 절감, 품질 제고가 구리업계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