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우리나라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보다 7.8배 빠른 것으로 조사됐다. 또 7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를 내지 못한 '만성 좀비 기업'이 924개 사에 달하는 등 가계와 기업 모두 심각한 부채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2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9월 금융 안정 상황 자료를 공개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9~2016년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연평균 3.1%포인트였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부채 증가율에서 소득 증가율을 빼서 산출한다. 같은 기간 OECD 연평균 가계부채 증가 속도(0.4%포인트)의 7.8배에 달하는 수치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계속 웃돌면 경제의 소비와 성장을 제약하고 금융 시스템의 잠재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 경제 규모 대비 가계부채 비중도 주요국에 비해 높았다. 2016년 말 기준 각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을 살펴보면 한국 95.4%, 영국 93.5%, 미국 80.4%, 일본 62.3%, 독일 53.4% 등이었다.

특히 지난해부터 국내 가계 대출 증가세가 작년부터 다수 누그러진 것과 반대로, 자영업자 대출 증가세는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개인사업자 대출을 보유한 사람이 받은 개인사업자 대출과 가계 대출을 더해 자영업자 대출 규모를 계산한다.

2분기 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개인사업자 대출(379조9000억원)과 이들의 가계 대출(210조8000억원)을 합친 590조7000억원이었다. 자영업자 대출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2016년 13.7%에서 올해 2분기 15.6%로 뛰었다. 가계 대출 증가율이 같은 기간 11.6%에서 7.4%로 소폭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한국은행은 "부동산 임대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어나면서 임대사업자 등록이 올해 상반기에만 7만명 늘었고, 주택 담보 대출 규제 강화에 따라 사업자 대출 수요가 증가했다"며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창업에 나선 점도 자영업자 대출 증가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단, 자영업자 대출에서 고소득(소득 상위 30%), 고신용(신용등급 1~3등급)자의 비중이 75% 안팎에 달할 정도로 높고,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도 0.29%로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0.64%)에 비해 낮다. 한국은행은 "자영업자 대출 건전성은 비교적 양호하지만, 최근 대출 증가세가 빠르고, 자산·소득 대비 부채 규모도 증가해 채무 상환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대내외 충격이 발생했을 때 빚이 많은 채무자, 음식·숙박·부동산업 등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상환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산 규모 120억원 이상으로 외부 감사인에게 회계 감사를 받는 기업(외감 기업) 중 지난 7년간 줄곧 대출 이자보다도 영업이익을 못 낸 '만성 좀비 기업'이 942개에 달했다. 전체 외감 기업의 4.1% 수준으로, 만성 좀비 기업 수는 2014년 828개에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이들의 총부채는 84조6000억원에 달한다. 한국은행은 "장기 존속 한계 기업이 계속 증가하면 자금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고, 위기 시 금융 시스템 리스크가 될 수 있는 만큼 구조조정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