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기기 회사 GC녹십자엠에스는 지난 12일 충북 진천·음성 혁신단지에서 혈액투석액 공장 건립에 들어갔다. 내년까지 170억원을 투자해 연간 10L(리터)짜리 혈액투석액 410만개를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최대 설비를 짓는다. 고령화로 최근 2~3년간 국내 시장이 급성장하자 기존 공장의 3배가 넘는 규모로 짓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인 '인보사'의 임상 시험을 신청하는 동시에 800억원을 들여 충북 충주 공장 증설을 시작했다. 코오롱생명공학 관계자는 "인보사는 세계 첫 무릎 관절염 유전자 치료제로 작년 11월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며 "미국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으로 보고 과감히 선제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의약품 공장 증설 바람이 거세다. 올해 들어 국내에서 공장을 완공했거나 신축·증설 계획을 발표한 제약·바이오 기업만 10곳이 넘는다. 최근 최저임금 상승과 경기 악화로 제조업체 공장이 잇따라 해외로 떠나거나 문을 닫는 일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국내 생산 설비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제약 수출 4조원 시대… 공장 늘리는 제약사들

제약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공장을 늘려가는 이유는 최근 들어 의약품 수출이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의약품 수출액은 처음 4조원을 넘어섰다. 수출 증가에 따라 생산량도 늘어 지난해 의약품 생산 실적도 20조원을 돌파했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상위 제약사뿐 아니라 그동안 해외 의약품 수입 판매에 의존했던 중소 업체들까지 해외 진출에 나서면서 의약품 생산 시설 투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령제약은 지난 8월 2700억원을 투입해 고혈압 신약을 생산하는 충남 예산 공장을 완공했다. 이 회사의 고혈압 신약 카나브는 51국에 수출하고 있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카나브의 수출량이 기대 이상으로 늘어나 회사 창립 이래 가장 큰 규모로 설비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GC녹십자도 지난해 5월 170억원을 들여 독감 백신 공장을 증축했고 오창 혈액 제제(혈액 성분을 가공해 만든 의약품) 공장의 생산 능력을 2배로 늘려 아시아 최대 규모(연간140만L)로 키웠다. 녹십자는 지난해 브라질 정부 입찰에서 역대 최대인 480억원 규모 혈액 제제 수출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파미셀은 지난 7월 머크·선바이오 등 해외 제약사에 대한 원료 의약품 수출 물량이 늘자 이전보다 생산 능력이 2배 늘어난 공장을 세웠다. 이에 앞서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지난해 11월 인천 송도 3공장을 완공하며 세계 최대 바이오 의약품 생산 능력(연간 36만L)을 확보했다.

풍부한 R&D 인력, 지자체 유치 노력도 투자 확대에 기여

코오롱생명과학같이 해외에서 의약품 승인이 나기도 전에 공장 건립에 들어가는 선제 투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그만큼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체질이 강해졌다는 의미다. 대웅제약도 내년에 미국에서 주름 개선 치료제 나보타 판매 허가가 나올 것에 대비해 지난해 말 기존 공장에 비해 생산 능력이10배 늘어난 화성 2공장을 신축했다.

제약업체들은 "제약·바이오 업종은 국가별로 규제가 다르기 때문에 해외보다 국내에 공장을 짓는 것이 생산 비용 절감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말하고 있다. 일반 제조업체처럼 여러 국가에 공장을 분산하는 것보다 국내에 생산 설비를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해외 제약사에 공장 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다.

일부 지자체는 제약 공장 유치를 위해 직접 기업 투자에 나서기도 한다. 경상북도와 안동시는 지난 7월 SK바이오사이언스의 안동 백신 공장 증설 사업에 기업과 공동으로 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제약 공장은 생산직뿐 아니라 품질 검수를 위한 연구 인력이 상당히 필요하기 때문에 바이오 인력이 많은 국내에서 짓는 게 더 유리하다"며 "제약사들이 국내에 생산 설비를 늘리면서 고용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