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 집안도 족보가 복잡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냥 엉겅퀴부터 시작해서 지느러미엉겅퀴, 큰엉겅퀴, 도깨비엉겅퀴, 고려엉겅퀴, 흰잎고려엉겅퀴, 가시엉겅퀴, 바늘엉겅퀴, 물엉겅퀴, 버들잎엉겅퀴, 동래엉겅퀴, 정영엉겅퀴 등등 참 많습니다.

이 중에서 우리 주변에 가장 흔히 보이는 것은 아마 지느러미엉겅퀴일 것입니다. 줄기에 지느러미 같은 날개가 있어서 알아보기도 쉽습니다. 원래 우리나라에 살던 식물은 아니고 유라시아 원산의 외래식물입니다.

지느러미엉겅퀴는 줄기에 지느러미 같은 날개가 있다

실체가 좀 애매한 것도 있습니다. 정영엉겅퀴가 대표적입니다. 흰색 꽃으로 피는 정영엉겅퀴는 같은 흰색 꽃이 피는 흰고려엉겅퀴와의 구분이 좀 애매합니다. 정영엉겅퀴다 싶은 것을 본 적은 있지만 흰고려엉겅퀴와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인식하기가 어렵곤 했습니다.

고려엉겅퀴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오리지널 정영엉겅퀴를 찾아봐야겠다 싶어서 지리산 정령치를 찾아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정영엉겅퀴는 지리산 정령치에서 처음 발견되어 이름 붙여진 식물이라고 하니까 말입니다.

사실 이 유래담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연령초(延齡草)와 큰연령초를 연영초와 큰연영초로 쓰고, 계뇨등(鷄尿藤)을 계요등으로 쓰는 식물학계의 요상한 관행대로 최초 발견지인 정령치에서 정영엉겅퀴의 이름이 유래됐다는 건 그럴듯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흰고려엉겅퀴

정령치는 지리산국립공원의 고개입니다. 정확한 위치를 알아놓고 가면 좋겠다 싶어서 정령치와 정영엉겅퀴를 검색해 보다가 어느 야생화 사이트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유래와 달리 정영엉겅퀴가 정령치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그 글에 따르면 일본의 ‘식물학잡지’에 나카이 박사가 정영엉겅퀴를 신종으로 명명한 기록에 1902년 채집자가 우치야마(Uchiyama)이고 채집한 산의 이름이 Chanryong이라고 나온답니다.

정영엉겅퀴의 학명 중 종소명이 chanroenicum인데 이는 채집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이 종소명은 경북 정령산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북에는 정령산이 없습니다.

우치야마의 채집기록에는 일부 한자 기록이 잘못 전달된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문경(聞慶)의 한자가 잘못되어 개경(開慶)으로 적었다든가, 조령(鳥嶺)의 조령산(鳥嶺山)을 정령산(頂嶺山)으로 잘못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Chanryong산은 바로 정령산이고, 정령산은 조령산의 오기라는 것입니다. 국립수목원에서 2015년에 발간한 ‘한반도 식물 지명 사전’이라는 책의 107페이지에도 그런 기록이 나옵니다.

결국 이창복 박사님이 ‘우리나라의 식물자원(1969)’에서 처음 등록한 정영엉겅퀴라는 식물명은 일본의 채집자 우치야마가 최초 채집지인 ‘조령산’을 잘못 기재한 ‘정령(Chanryong)산’을 정영으로 바꿔 생겨난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아마추어 고수가 해낸 그 추적 과정에 감탄이 절로 났습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정영엉겅퀴의 자생지로 지리산, 가야산, 구례와 함께 조령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 조령산이 정영엉겅퀴의 이름 유래가 된 최초 발견지라는 이야기는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문경새재 제1관문

이 정도 알았으니 조령산을 찾아가서 뒤져보면 됩니다. 조령산의 조령(鳥嶺)은 문경새재의 새재를 말합니다. 새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 지점입니다. 조령은 옛날에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영남의 선비들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죽령으로 가면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데, 문경새재를 넘으면 말 그대로 경사를 전해 듣고(聞慶) 새처럼 비상하리라는 미신이 있어서 그렇답니다.

이화령에서 본 조령산 쪽 풍경

그러나 새재는 몹시 높고 산길이 험하므로 548m 높이의 이화령(梨花嶺)을 이용하게 됐습니다. 이화령 도로의 개통으로 북쪽의 조령은 제1·2·3관문과 주변의 성곽 등을 사적 제147호로 지정하고 크게 보수하고 축조해 도립공원으로 정비했습니다.

그런데 이화령 도로는 구불구불해서 이용에 불편하다는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됐습니다. 결국 1998년에 이화령 터널이 개통되고 2004년 12월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터널까지 개통되었습니다.

구불구불한 이화령 고갯길은 ‘이화령 옛길’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과거에는 매우 붐볐으나 이제는 한산한 자전거 도로이자 트레커들의 새재 자전거길로 변했습니다. 그곳 어디쯤에 정영엉겅퀴가 있는 것입니다.

이화령 옛길

혹시나 해서 또 검색해 봤더니 조령산에서 정영엉겅퀴를 찍은 기록이 있었습니다. 재수가 좋으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조령산은 가는잎향유 때문에 근처만 지나가봤지 산을 올라보지는 못해 식생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곳입니다.

등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길을 끈 건 좁은잎배풍등이었습니다. 배풍등에 비해 잎이 좁고 가늘며 꽃이 보라색인 점이 다른 식물입니다. 배풍등은 비교적 흔한 편이지만 좁은잎배풍등은 약간 드문 편이라 언제 봐도 반갑습니다.

지금까지는 대개 초본으로 기록해왔지만 목본으로 자라납니다. 좁은잎배풍등뿐 아니라 배풍등도 그렇습니다. 이렇듯 덩굴성 식물들은 처음에는 초본처럼 보이지만 목본으로 성장하는 것이 적지 않습니다.

좁은잎배풍등은 풀 같지만 나무다.

새콩은 덩굴이긴 해도 분명히 초본인 식물입니다. 대개 연한 보라색으로 피는데 이곳의 것은 완전히 흰색이었습니다. 석회암 지대에서 자라는 새콩은 이렇게 흰색인 경우가 많습니다. 새콩은 꽃에서 열매가 달리기도 하지만 땅속에 달리는 폐쇄화에서 달리는 열매가 크고 식용 가능해서 작물로 키울 만합니다.

새콩의 흰색 꽃

가장 특이했던 건 비교적 매우 드문 꿩의다리가 이곳에 몇 포기씩 보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귀한 편이기도 하지만 이런 곳에도 있구나 싶어서 좀 특이했습니다.

꿩의다리의 열매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목표로 하는 정영엉겅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유력해 보이는 곳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차근차근 살펴보던 중 낯익은 잎을 가진 식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게 바로 정영엉겅퀴였습니다.

다만, 꽃이 피어 있지 않아서 몰라봤던 것입니다. 몇 포기밖에 없었고요. 정영엉겅퀴가 고려엉겅퀴 또는 흰고려엉겅퀴와 다른 점은 정영엉겅퀴의 잎밑이 끊어진 듯한 모양이고 잎자루가 잎몸보다 길다는 데 있었습니다.

아직 덜 핀 정영엉겅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럴 리 없을 거라며 믿지 않았는데, 이번에 보니 뿌리 쪽의 잎이 주로 그런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줄기 쪽의 잎은 그렇지 않았지만 뿌리 쪽의 잎은 전체적으로 넓적하고 잎자루가 긴 편이었습니다.

문제는 모두가 다 그런 게 아니어서 어떤 건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의 것은 키가 작고 어려서 단언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어떤 것은 정영엉겅퀴 같은 스타일이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혼생하기도 했습니다.

정영엉겅퀴의 뿌리 쪽 잎은 잎몸보다 잎자루가 길다

또 크게 자라난 것은 뿌리 쪽의 잎이 남아 있지 않아 비교하기 어려운 경우도 허다하고요. 하여 최종 소감은 ‘역시 좀 애매하다!’였습니다. 그러므로 잎의 형태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정영엉겅퀴의 어린 개체의 잎은 넓적한 편이다

변종이나 품종이 아니라 종 수준에서 다루는 식물이라면 어중간하게 겹치는 변이를 보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잎의 형태나 잎자루와의 길이 외에 총포의 지름으로도 구분하는 법이 있습니다.

즉, 고려엉겅퀴나 흰고려엉겅퀴는 총포의 지름이 3㎝ 이상으로 넓고 정영엉겅퀴는 3㎝ 이하로 좁은 편이라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아주 선명한 식별 포인트라고 단언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듯 일본의 학자, 그리고 선대의 학자가 걸어간 길 위에 섰던 꽃들이 아직도 이리저리 헝클어진 채 피어 있습니다. 누가 좀 확실하게 정리해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다들 바쁘고 돈 안 되는 일이라 그런지 선뜻 나서는 후학이 없는 듯합니다.

아마추어 고수들에게 슬쩍 또 떠밀어 봅니다. 열정 하나로 호기심을 해결해 가는 그네들이 언젠가 멋지게 해내리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