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경영참여 확대 적극 노력" 단체협약 체결
재계에 노풍 확산…"일부 대기업 노조 기득권만 강화"

자산 규모 185조원의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015760)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가해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고 기관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국내 최대 전력회사인 한전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면 한국수력원자력, 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 한국전력기술 등 한전의 자회사도 순차적으로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한전에 따르면 김종갑 한전 사장과 최철호 한전 노동조합위원장은 지난달 22일 ‘공사와 조합은 노동이사제 등 근로자의 경영참여 확대를 위해 적극 노력한다’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서에 합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기업 중에서는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처음으로 지난 7월 노동이사제 도입을 목표로 근로참관제를 시행한 바 있다.

전남 나주시 혁신도시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본사.

한전 관계자는 "노동이사제가 국정과제로 돼 있으니 이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사전준비를 하자는 것에 노사가 합의한 것"이라며 "서울시 등 이미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곳의 현황을 파악하고 (어떤)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할지) 고민해보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당초 작년에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을 개정해 올해부터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려고 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이와 관련한 연구용역도 진행했다. 그러나 "노동자 대표가 노조의 이익만 주장하면서 의사 결정에 반대하면 공공기관 운영이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는 반대 여론에 밀려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한전은 공운법 개정 등 진행 상황을 보고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노동이사제 외에 한전은 올해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강화했다. 눈에 띄는 내용은 ‘부당노동행위 등의 구제’ 조항을 신설해 징계 등으로 해고된 조합원이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경우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 조합원의 자격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전은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 확정 또는 판결 확정시 당초 처분을 취소 또는 무효로 하고 정상임금을 지급하고 해고 등 징계 기간을 근무연수에 산정하기로 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는 근로자가 노조 활동을 하려고 할 때 기업이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 등을 말한다. 부당노동행위를 한 자는 노조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한전 관계자는 "부당노동행위 등의 구제 내용은 노조법에 따라 새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전은 또 명예퇴직 대상을 ‘근속연수 20년 이상인 직원 또는 공상자(업무수행 중 다친 직원) 중 10년 이상 근무한 자’에서 ‘근속연수 20년 이상인 직원’으로 바꿔 명예퇴직을 더 까다롭게 했고, 특별휴가를 신설해 헌혈할 때 연간 2일, 자녀 돌봄이 필요할 때 연간 2일, 포상받았을 때 1~2일, 건강검진 받을 때 ‘그 기간’, 난임 치료를 받을 때 3일(유급 1일, 무급 2일)을 쉴 수 있게 했다. 배우자 출산에 따른 경조 휴가는 5일에서 10일로 늘렸다. 한전 관계자는 "각종 휴가제도는 공무원 기준에 따라 신설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친(親)노동계란 평가를 받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최근 재계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풍(勞風)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수십 년간 사실상 무노조 경영을 한 포스코에 지난 17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노조가 생기고 삼성전자(005930)에도 지난달 10일 두 번째 노조가 출범했다.

기업들은 노조 활동과 관련해 ‘ㄴ’자도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노조 활동 방해 의혹을 받는 삼성이 검찰로부터 8번이나 압수수색을 당하자 몸을 사리는 것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근로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최근 노동계의 움직임을 보면 이미 충분한 권한을 누리는 일부 대기업 노조들이 정부의 친노동 기조를 이용해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