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형 금통위원이 지난달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도 기준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낸 가운데 금융 안정에 유의해야 한다는 금통위 내 목소리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 금리 역전 장기화 등을 감안할 때 현 시점에서 금융 안정은 곧 금리 인상을 의미한다.

한은이 18일 공개한 8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추가 금리 인상을 놓고 금통위원 간 의견이 엇갈렸다. 이주열 한은 총재와 이일형 위원을 제외한 5명 중 2명의 위원이 금융 안정에 더 유의해야 한다며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고, 또다른 2명의 위원은 부진한 물가와 경기 하방리스크에 더 유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머지 1명의 위원은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금통위는 8월 기준금리를 연 1.50%로 동결했다.

이일형 위원은 "현재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 아래 금융 불균형이 계속 누적되고 있다"며 기준금리를 현행 연 1.50%에서 1.75%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그동안 부동산 관련 부채가 은행 가계대출을 중심으로 증가했는데, 각종 거시건전성 정책이 도입되면서 비은행 개인사업자 대출 등 다른 경로를 통해 증가한 이른바 ‘풍선 효과’를 우려했다. 또 부동산 관련 투자가 지속가능한 소득으로 연결되지 않아 결국 우리 경제에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위원은 "과도한 불균형 누적을 억제하는 동시에 정책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수요 압력이 견인되는 현 시점에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를 소폭 축소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여 투자 유인을 적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또 "내수 지원을 위해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이에 따라 금융 불균형이 심화되면 우리 경제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경기 하방 압력에 대응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일형 위원을 제외한 두 명의 위원도 금융 안정에 보다 유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랫동안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유지된 상황에서 금융 안정을 강조하는 것은 통화 긴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A위원은 "현재의 성장, 물가, 금융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거시경제 불균형 위험보다 금융 불균형 위험에 유의해야 한다"며 "금리 인상을 통해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현재보다 다소 축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중 무역갈등, 신흥국 금융 불안 등 대외 여건이 불확실하고, 7월 고용 부진으로 경제 주체의 심리가 상당히 위축된 점을 고려할 때 이번 회의에서 금리를 인상할 경우 자칫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 불균형을 고려하면 금리 인상이 필요하지만 경기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어 금리 인상 시점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B위원 역시 "가계부채와 같은 금융불균형 누적에 대해 보다 많은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완화적 통화 정책에 따른 금융불균형 누적 문제에 대한 대응이 각국 중앙은행의 중요 과제가 됐다"며 "우리도 저금리 기조 아래서 지난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가계부채 증가와 일부 지역 부동산가격 상승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우려했다.

B위원은 최근 경기 부진은 단기적인 경기순환 요인보다 그동안 누적된 제조업 경쟁력 약화 등 구조적 요인과 정책적 요인에 크게 기인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경기 지원을 위해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유지하기보다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중장기적인 노력이 더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다만 그는 "부진한 고용과 물가목표를 밑돌고 있는 물가에는 경기적 요인도 함께 작용하고 있을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도 고려하면서 통화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당분간은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거시지표의 움직임을 더 시간을 갖고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두 명의 위원은 경기와 물가에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당분간 금리를 동결해 부진한 경기와 낮은 물가 상승률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C위원은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해 점차 확대되는 거시경제의 하방 위험을 완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그 결과로 발생하는 미국과의 금리 격차 확대, 자본이동 및 환율변동은 우리나라와 미국의 거시경제 상황의 격차를 반영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경제는 세계경제 호황과 반도체 특수에 힘입어 지난 2분기까지 잠재 성장률 내외의 성장세를 유지해 왔으나 하반기 이후의 거시경제에 대해서는 점차 하방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글로벌 리플레이션 추세와는 상이하게 우리 경제의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도 총수요가 부진함을 시사한다"고 진단했다.

D위원은 "실물경제는 불확실성 상승에도 불구하고 잠재성장 궤도를 다소 상회 또는 잠재성장 궤도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낮고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므로 확대 속도를 확인하며 금리 인상 시점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위원은 "국내경제는 상반기 중 잠재성장률에 부합하는 성장세를 지속했으나 수출과 내수 간의 괴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향후 성장경로 상의 불확실성이 다소 높아진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지만 앞으로 금리 인상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방향을 언급하지 않았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의사록에 나온 금통위원들의 발언은 이전보다 더 매파(통화 긴축 선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며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은 금통위는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50%로 25bp 인상한 뒤 9개월 연속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