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 수퍼 사이클은 끝났다"는 외국계 투자은행(IB)과 "급격히 꺾이진 않을 것"이라는 국내 증권사 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반도체 시장을 비관적으로 전망한 보고서를 내놓을 때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휘청거린다. 시장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한국 증시를 이끌어온 반도체 성장세가 꺾일 가능성에 투자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국계 IB "반도체 호황 끝났다"

올 들어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을 중심으로 반도체 시장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 2분기 D램 수요가 줄고 재고는 늘어나 가격 하락 압력이 지속되고 있으며, 낸드 플래시 역시 공급이 지나치게 많다는 우려다.

우리나라 핵심 수출 업종인 반도체 시장을 두고 국내 증권업계는“호황세를 이어갈 것”이라지만, 외국계 투자은행들은“호황이 끝났다”며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직원들이 시스템LSI 반도체 생산라인서 제품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특히 반도체 업종에 대해 여러 차례 비관론을 내놓은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저승사자'로 불리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5일(현지 시각)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를 내리고 투자 의견을 '매도'로 조정했다. 앞으로 주가가 떨어질 전망이니 주식을 팔라는 얘기다. 7월까지 9만원에 육박하던 SK하이닉스는 주가는 모건스탠리 '매도' 보고서에 하루 만에 4.7% 하락하며 8만원 선이 무너졌다. 사흘 만인 8월 9일에도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업종 전체의 투자 전망을 '중립'에서 '주의'로 낮췄다. 모건스탠리가 제시하는 투자 의견 중 가장 낮은 단계다. 다음 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3.2%, 3.72%씩 곤두박질 쳤다.

모건스탠리는 이달 들어서도 D램 등 주요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어 골드만삭스까지 반도체 투자 주의보를 내렸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반도체 자본 설비 분야에 대한 투자 의견을 '매력적(attractive)'에서 '중립적(neutral)'으로 하향 조정한 것이다. SK하이닉스에 대해서는 '매수'에서 '중립'으로 투자 의견을 낮췄고, 삼성전자는 '우선 매수' 추천 종목 명단에서 제외했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들은 "메모리칩 등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공급 및 가격 조정 이슈가 지속되고 있다"며 "내년에는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코스피 시장에서 또다시 삼성전자 주가는 1.12%, SK하이닉스 주가는 0.8%씩 각각 떨어져 연저점을 기록했다.

◇국내 증권사 "반도체 호황 더 간다"

하지만 국내 증권업계에서는 반도체 호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며 '매수'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5년째 지속돼 온 반도체 초호황 국면이 정점을 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급격한 경기 둔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을 위해 데이터센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AI, 5세대 이동통신(5G)을 구현하는 데 반도체가 핵심 부품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등 최근 반도체 업종에 대한 긍정적 전망도 나왔는데, 시장은 부정적인 전망에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계 IB가 주장하는 하반기 수요 둔화는 중·단기적인 현상으로 이미 주가에 반영돼 있는 악재라는 분석도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를 현재 주가보다 30% 높은 11만원으로 제시했다. 김영건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과거 D램 가격이 장기 하락했을 때와 달리 지금은 공급이 여전히 제한적이라 가격 하락 폭과 기간이 짧을 것"이라며 "내년 하반기 모바일 성수기를 기점으로 가격 반등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메리츠종금증권도 삼성전자에 대해 '매수' 의견을 유지하면서 "업황 전반이 둔화하는 것이 아니라 올 4분기부터 내년 2분기까지 단기 조정 구간으로 보인다"며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수요 성장이라는 큰 그림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D램 수요와 가격 회복이 예상되는 내년 하반기까지는 반도체 업종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산업의 잠재 성장성 약화, 중국의 시장 진입 가능성 등 주가를 떨어뜨리는 우려가 사라질 때까지는 보수적인 투자를 추천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