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38평(전용면적 94㎡) 아파트에 사는 은퇴자 박모(72)씨는 올해 재산세로 작년보다 80만원 늘어난 357만원 내야 한다. 재산세 납부 기준인 공시가격이 올해 20% (7억6000만→9억1200만원) 오른 결과다. 박씨는 "수십 년 그냥 살아온 집인데 매년 재산세가 뜀박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 같은 1주택자의 보유세도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에 따라 2022년에는 올해의 2~3배까지 인상될 수 있다. 본지가 14일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세무팀에 의뢰, 정부의 공시지가 현실화 정책에 따른 보유세 인상액을 추정한 결과이다. 시세가 현재에서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2017년부터 최근까지 급등한 시세 상승분을 내년 공시가격에 반영하고, 후년부터는 매년 10% 공시가격을 올린다고 가정해 추정했다. 정부는 9·13 대책을 발표하면서 "시세가 급등한 지역에 대해 공시가격에 올해 시세 상승분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1주택자 보유세 4년 뒤 3배까지 오를 수 있어

최근 시세가 19% 상승한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전용 82㎡)의 공시가격은 올해 12억5600만원에서 내년에는 13억424만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보유세는 작년 399만원, 올해 501만원에서 내년엔 549만원으로 인상된다. 2년 사이 150만원 정도 올랐지만, 그 이후도 더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종부세 부과 대상 금액(과세 표준)을 정할 때 주택 공시가격을 얼마나 반영할지 정해 놓은 비율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현행 80%에서 2022년까지 100%로 올리고, 고가 1주택에 대해서는 세율도 인상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와 종부세 강화 방안이 추진될 경우, 4년 뒤 잠실주공 아파트의 보유세는 1207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공시지가 현실화하면 종부세 부과 대상 크게 늘어나

공시가격이 9억원을 초과, 종부세 부과 대상으로 편입돼 세금 부담이 급증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전용 84㎡)의 경우 올해 보유세로 174만원을 낸다. 하지만 공시가격이 시세 상승률을 반영한다고 가정하면 내년 공시가격은 9억6300만원으로,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된다. 이후 공시가격이 추가로 올라 누진적으로 종부세 부담액이 늘면 2022년에는 보유세 부담이 561만원으로 현재의 3배가 된다. 현 시세가 7억원인 아파트 1채를 보유하더라도 보유세가 4년 새 73% 늘어난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은퇴자 김모(66)씨는 "주변에서 '집값이 수억 올랐는데, 겨우 1년에 수백만원 내는 게 대수냐'고도 하지만, 난 그 몇 백만원 때문에 이 동네에서 쫓겨날 판"이라고 했다.

"1주택 연금생활자 충격 완화할 방안 찾아야"

전문가들 사이에선 "은퇴한 1주택 연금 생활자의 충격을 완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3억원에 집을 산 사람이 집값이 6억원으로 올랐다고 해서 소득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주택자를 잡으려다가 애꿎은 1주택자들의 생활 안정을 흔드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도 "소득이 오직 주택뿐인 고령자들에겐 양도세를 대폭 줄여 주택 매도의 길을 열어주는 등 대책이 요구된다"고 했다.

현재 국회에는 고령자와 1주택자의 종부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현재는 만 6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 산출세액의 10~30%를 공제해주는데, 개정안은 이를 30~70%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주택자의 경우 장기 보유에 대한 공제율도 현행 최고 40%에서 50%까지 올리도록 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공시가격은 세금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료 산정, 기초노령연금 수급자 선정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공시가격이 크게 오르면 복지 혜택 면에서 부작용도 생길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