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서부에서 작년 5월 매물로 나온 150만파운드(22억5000만원) 주택은 1년 넘게 주인을 찾지 못하자 최근 호가(呼價)가 110만파운드(16억1744만원)까지 떨어졌다. 집값이 27%가량 빠진 셈이지만 사겠다는 사람은 아직도 없다. 집주인 랜스 폴은 "가격이 더 떨어질지 몰라 두렵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 경제 금융 중심지인 시티오브 런던과 고가 주택이 밀집한 부촌인 첼시, 켄싱턴 지역 평균 집값은 각각 23%, 14% 떨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런던 주택 시장의 파티는 끝났고, 이젠 후유증(hangover)이 시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호주 시드니 전역에서도 몇 달 새 집값이 수십만호주달러(수억원대) 내린 주택들이 속출하고 있다. 2012년부터 치솟기 시작한 시드니 주택 가격은 5년간 50% 넘게 오르다 작년 9월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난 8월 기준으로 최근 1년 새 주택 가격이 5.6% 떨어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오랜 기간 호주 집값이 미쳤다고 주장해온 이들이 최근 주택 시장의 조정 국면을 반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드니·런던 등 세계 집값 하락세로

런던, 시드니, 캐나다 밴쿠버, 뉴질랜드 오클랜드 등 수년에 걸쳐 집값이 폭등하며 거품 논란을 일으켰던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집값이 잇따라 하락세로 반전됐다. 오랜 가격 상승에 따른 피로감과 급등한 집값에 대한 부담이 누적된 상황에서 각국 정부가 대출, 세금 규제를 강화하며 주택 시장에 개입한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픽=이철원

전문가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소득 대비 집값이 장기간 치솟아 하락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 이후 이 도시들의 부동산 시장에는 낮은 금리를 배경으로 중국 등 외국 자본이 쏟아지면서 집값을 올렸다. 집값 상승세가 탄력을 받자 투자자뿐만 아니라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려는 실수요자들도 급증했다. 그 결과 지난 5년간 밴쿠버·시드니·오클랜드 등의 집값은 50% 이상씩 뛰었다. 같은 기간 집값이 40% 뛴 영국에서는 일반 주택 대신 템스강 배 위에 사는 '보트 하우스'족(族)들도 등장했다. 비이성적인 집값이 중산층의 주거난으로 이어지고 가계 부채가 급증하자 각국 정부는 1~2년 사이 집값 안정 대책을 꺼내 들었다.

영국은 집값 급등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자 2016년 투기용 부동산과 두 채 이상 보유 주택에 붙는 인지세율(거래세 일종)을 3%포인트 올렸다. 지난해부터는 주택 임대사업자의 주택 담보대출 이자에 대한 세금 공제 혜택을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세 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인한 경기 불확실성이 확산되자 런던 주택 시장은 차갑게 얼어붙고 있다. 최근 1년 새 평균 집값이 0.7% 하락하며, 금융 위기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돈줄 옥죄어 집값 잡는 규제책

각국 정부는 주택 시장을 잡기 위해 공통적으로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올 1월부터 주택 담보대출 때 추후 상환 능력을 검증하는 '스트레스 테스트'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영국에서도 2014년부터 시중 은행들이 소득에 비해 부채가 많은 가구에 대한 주택 담보대출 비중을 줄이도록 했다.

호주에서는 원리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거치식 주택 담보대출을 제한했다. 호주 주택 시장 호황기 때 '주담대' 10건 중 4건이 거치식 대출일 정도로 쉽게 빚을 내 적은 비용으로 집을 사는 행태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돈줄을 옥죄자 지난 6월 호주의 투자용 주담대 총액은 지난 5년 사이 최저치 기록했다. 현지에서는 대출 규제가 효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주택 사는 외국인 세금 부담 늘려

외국인이나 다주택자, 고가 주택 등을 겨냥해 세금 부담을 높인 것도 공통점이다. 특히 중국인의 부동산 싹쓸이 쇼핑이 집값 급등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캐나다·호주·뉴질랜드에서는 외국인 등 비거주자를 향한 세금 부담을 늘리는 정책이 잇따라 도입됐다. 시드니가 있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는 작년 7월부터 외국인 신규 주택 구입자들에게 부과하는 특별부가세 세율을 4.0%에서 두 배인 8.0%로 올렸다. 캐나다 밴쿠버가 있는 브리티시콜럼비아주(BC)정부도 외국인 주택 구매자에게 부과하는 특별취득세율을 최근 들어 15%에서 20%로 높였다. 지난달 뉴질랜드 의회는 외국인의 기존 주택 구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현지 언론들은 부동산중개업자들의 말을 인용해 규제 도입 이후 중국인 등 외국인 주택 매수세가 줄고 있다고 말한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지적으로 집값이 폭등하자 정부가 규제 대책을 꺼내는 상황이 우리보다 외국에서 먼저 나타난 셈"이라며 "규제 이후 해외 주요 도시 주택값이 하향 반전했듯이 서울 집값도 영원히 오른다는 생각은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