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산업의 변혁에 대응해 제조업을 넘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업체로 변화할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지난 7일(현지시각) 인도에서 열린 ‘무브(MOVE)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 가진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보기술(ICT)과의 융합과 공유경제 확산 등 최근 자동차 시장에서 진행 중인 거대한 변화에 발맞춰 다양한 신사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미였다.

투자의 핵심은 카셰어링(차량공유) 사업이다. 완성차 시장의 성장이 정체된 반면 공유서비스 시장은 매년 빠른 속도로 커지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카셰어링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올들어 현대차는 카셰어링을 포함한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공유서비스 업체인 그랩을 포함해 다양한 업체들과 업무협약을 맺었고 최근에는 유럽, 미국 업체들과도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현대차는 지난 20일 인도의 카셰어링업체 레브와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구영기 현대차 인도법인장(왼쪽)이 아누팜 아가왈(가운데), 카란 제인(오른쪽) 레브 공동 창업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의 투자는 해외에서만 활발하게 이뤄질 뿐이다. 정작 국내에서는 별다른 투자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 있었던 소규모의 투자도 최근 정리가 됐다. 택시업계의 강한 반발과 정부의 규제로 인해 카셰어링 사업이 제대로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 아시아, 유럽 이어 美와 손잡는 현대차…국내에서는 6개월만에 사업 철수

현대차는 지난 1월 동남아 모빌리티 서비스 시장 진출과 차량공유 사업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그랩에 전략적 투자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랩은 현재 동남아 호출형 차량공유(카헤일링) 시장의 75% 이상을 점유한 업체다.

현대차의 카셰어링 사업 투자는 그랩을 시작으로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인도의 차량공유서비스 업체인 레브와도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호주의 개인간 차량대여 연결업체인 카넥스트도어와도 손을 잡았다. 아이오닉 전기차 100대를 투입해 네덜란드의 카셰어링 시장에도 진출했다.

최근에는 ‘카셰어링 시장의 성지(聖地)’로 꼽히는 미국에도 진출했다. 지난 11일 미국의 카셰어링 서비스 비교업체인 미고에 전략적 투자를 하기로 발표한 것이다. 2016년 미국 시애틀에서 설립된 미고는 여러 카셰어링 업체의 서비스를 비교, 분석해 소비자에게 가장 적합한 곳을 알려주는 업체로 현재 뉴욕과 LA, 시카고 등 미국 75개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율주행차 상용화와 함께 몇 년 안에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은 기존 완성차 판매에서 카셰어링과 연계된 각종 사업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며 "미래 경쟁력을 선점하는 차원에서 최근 해외에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고 어플리케이션의 실행화면

반면 국내에서의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투자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동서비스시장의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택시업계의 강한 반발과 정부의 규제로 카셰어링 사업의 ‘씨앗’조차 뿌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이유에서다.

국내에서 투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대차는 지난해 국내 카풀 서비스 스타트업인 럭시에 50억원을 투자했다. 두 회사는 카풀 시스템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카풀과 연계되는 신사업을 함께 연구해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현대차의 럭시 투자는 불과 1년도 안 돼 끝을 맺었다. 지난해 2월 보유했던 럭시의 지분을 카카오 모빌리티에 전량 매각하고 사업에서 철수한 것이다. 당시 자동차업계에서는 "택시업계가 현대차 택시의 불매운동까지 불사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법인차량 판매가 급감할 것을 우려한 현대차가 결국 럭시 투자를 중단한 것"이라는 뒷말이 많았다.

◇ 카셰어링 시장 주도하는 美·中…규제로 신사업 성장판 닫는 韓 정부

전문가들은 기존 운송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정부와 지자체의 규제가 현대차를 포함한 자동차 업체들의 국내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많은 국내 기업들이 앞선 차량공유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과 신선한 사업 아이템을 갖추고도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심야버스 공유서비스업체였던 콜버스는 정부의 규제와 운송업계 반발에 부딪혀 결국 서비스를 중단했다.

지난해 심야시간에 전세 셔틀버스 공유서비스를 시작했던 콜버스는 초기 단계부터 정부 규제와 택시업계의 반발에 시달렸고 결국 별다른 성장을 하지 못한 채 서비스를 중단했다.

카풀서비스업체 풀러스의 경우 서비스 시작 1년반만에 회원수 75만명, 누적 이용건수 370만건을 돌파했고 SK와 네이버 등으로부터 220억원을 투자받으면서 한국형 카헤일링 사업을 이끌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서울시로부터 고발을 당하는 등 진통을 겪은 끝에 결국 사업을 멈췄다.

국내 카셰어링 시장이 정부의 규제와 업계 반발로 어려움을 겪는 반면 미국과 중국 등에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우버와 리프트 등 카헤일링 업체들이 운송서비스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디디추싱을 중심으로 호출형 차량공유서비스 기업들의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완성차 업체들도 협업과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미국 자동차 기업들은 리프트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신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GM의 경우 이와 별도로 자체 차량공유서비스 업체인 메이븐을 설립해 운영을 시작하기도 했다.

카셰어링 시장의 불모지였던 유럽 역시 최근 규제를 줄이며 변화하는 추세다. 폴크스바겐의 경우 지난 2016년 카헤일링 브랜드인 모이아를 출범시켜 독일 베를린, 함부르크 등에서 서비스를 시작했고 올들어 사업 분야와 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를 포함한 국내 기업들의 투자가 해외로만 쏠리는 사이 국내는 운송업계의 이익 보전을 위해 새로운 시장의 형성과 고용 창출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