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가격을 턱없이 높여 부르는데도 매물이 나오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가 채가요. 대출도 죄어놨는데, 도대체 이 많은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서울 마포구 아현동 공인중개사)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여의도점에서 집을 사려는 손님이 창구 앞에 앉아 직원과 주택대출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간 저(低)금리로 넘쳐나는 시중 유동자금을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6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서울시내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8조9000억원. 그전 1년간(13조7000억원)에 비해 35% 줄었다.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을 통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줄여놓은 결과다. 그런데도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11만9927건→12만2029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올 들어 서울에서 이뤄진 아파트 거래 총액은 약 42조원 규모로 추정되는데, 주택 구매에서 개인별 대출 의존도는 37% 안팎을 유지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10조원 이상이 은행에서 아파트 시장으로 흘러들어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경로를 따져봤다.

◇10억 집 주담대 4억인데 전세대출 5억

은행 돈이 주택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일반적인 경로는 주택담보대출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주택담보대출은 집값의 40%까지만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집을 산 사람은 오히려 늘었다. 자산 관리 전문가들은 지난 수년 동안 '눈치작전' 중이던 현금성 자산 중 일부가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KEB하나은행 잠원역지점 박은정 PB(자산관리 전문가) 부장은 "지난 수년 동안 저금리와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MMF(머니마켓펀드)나 예금 등에 묶어둔 대기 자금이 많이 늘어 왔다. 묻어둔 돈이 부동산으로 쏠리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경로는 전세자금대출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보증금은 2년 전에 비해 2.88% 올랐다. 전세 급등세가 진정된 것이다. 하지만 5대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액은 7월 말 기준 56조3466억원으로, 1년 만에 43.64% 급등했다. 정부는 이 대출의 상당액이 주택 구매 용도로 전용(轉用)됐다고 본다. '은행→전세입자→집주인→주택 구매'의 흐름을 통해서다.

심지어 지금 서울 주택 시장 상황에서는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하면 주택담보대출보다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다. 전세자금대출 한도는 전세보증금의 최대 80%. 그런데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금 비율)이 70%에 육박한다. 서울에서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 주택담보대출로는 4억원까지밖에 안 나오지만, 10억원짜리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간 뒤 전세대출을 받아 같은 아파트를 사는 방식으로는 5억여원도 대출 가능하다. 현 정부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다(多)주택자'를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해왔고, 문재인 대통령은 전세 거주자를 '전세 난민'으로까지 지칭했지만,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전세담보대출 제한을 검토했던 이유다.

◇LTV 규제 비켜간 사업자대출

세 번째 경로는 임대사업자 대출이다. 임대사업자대출 증가율은 2016년 19.4%에서 2017년 23.8%, 올해 2분기 24.5%를 기록 중이다.

사업자대출은 투기과열지구에서도 LTV 40% 적용을 받지 않는다. 주택을 다른 경제활동에 사용되는 '사업용 자산'으로 보기 때문이다. 임대를 놓은 아파트 월세가 '원금을 제외한 월 이자'의 1.25배만 넘으면 된다. 사업자 대출을 이용하면 사실상 집값의 80%까지도 빌릴 수 있다. 국토교통부와 기재부가 임대사업자에 대한 각종 세제 혜택 축소를 검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임대사업자 대출에 LTV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과 무관하게 지방에서도 서울 아파트 시장으로 돈이 쏟아져 들어온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7월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가운데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이 사들인 거래의 비중은 18.7%. 2년 새 2.4%포인트가 늘었다. 강남구는 훨씬 더하다. 18.9→23.3%로 늘었다. 중개업소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신반포자이 아파트는 최근 팔린 아파트의 절반가량이 지방 사람에게 팔렸다. 현지 중개업소 대표는 "대구, 전북 등 전국 각지에서 강남 아파트를 사러 올라온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특히 지방 주택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서울 주택 시장 과열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