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제작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뮤즈라이브는 올해 소녀시대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의 음반 30여 종을 발매해 전(全) 앨범을 완판했다. 10여 곡이 들어간 앨범의 가격은 1만7000~2만원 정도다. 이 회사가 내놓는 음반은 평균 1만장만 찍는 '한정판'이다. 총 25만장을 팔았다.

이 스타트업이 파는 앨범은 명함 절반 정도 크기의 '키트'다. '키트'에 딸린 이어폰 잭을 스마트폰에 꽂으면 자동으로 음원 앱(키노플레이어)이 켜지고, 구매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르면 10월 방탄소년단의 앨범도 내놓을 예정이다. 이 회사의 석철 대표는 "CD 등 물리적인 음반이 끝났다고 하는데 아직 세계 전체 음악 시장 16조원 규모 중 CD 음반이 6조원"이라며 "팬들은 여전히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갖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음반·출판·주류 등 레드오션(경쟁이 치열해진 시장) 분야에 뛰어들어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존 대기업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활력을 잃은 사양산업에서 발상의 전환으로 새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레드오션?… "도전하면 새 시장이 보인다"

종이 책 출판업계에서 연 30%의 성장세를 보이는 출판사도 있다. 4년 전 설립된 부크크는 누구나 무료로 책을 펴낼 수 있는 주문형 출판사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원고를 업로드하고 원하는 수량만 입력하면 된다. 한 권도 가능하다. 이 출판 스타트업은 무려 7282종의 책을 내놨고 데뷔한 작가 수는 7689명에 달한다. 부크크를 통해 돈이 없는 작가 지망생들이 첫 작품을 내면서 신진 작가 등용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심경 글로 유명한 작가 '흔글'도 첫 작품 '무너지지만 말아'를 부크크를 통해 출판했다. 한건희 부크크 대표는 "일반 출판사는 미리 500~1000부를 계약하고 돈을 먼저 내야 한다"며 "우리는 어떠한 선금 없이 책이 팔리는 대로 15~35%의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라 재고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수제 맥주 스타트업인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오비맥주하이트진로가 장악한 맥주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년 전 창업한 회사는 '첫사랑' '성수동 페일에일' 등 30여 종의 밀맥주·흑맥주 등을 직접 만든다. 양대 맥주 기업보다 더 많은 종류의 맥주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창업 당시에 알토스벤처스·본엔젤스 등 유명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기도 했다. 이 회사는 창업 첫해 매출 10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 30억원까지 성장했다. 김 대표는 "다품종을 소량으로 뽑아내는 수제 맥주는 기존 대형 주류 회사가 진입하기 어려운 분야"라며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개척 가능했던 시장"이라고 했다.

침대 매트리스 스타트업 삼분의일에이스침대·시몬스 대형 가구 회사가 선점하고 있는 침대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온라인으로만 제품을 판매해 가격을 기존 매트리스 가격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이 회사는 1년 만에 매출 50억원가량을 올렸다. 이 회사 전주훈 대표는 "그동안 침대는 가서 보고 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이미 미국에선 아마존 등에서 온라인 주문이 대세"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놓친 틈새 공략해 사업 확장

이런 스타트업들의 공통점은 기존 시장에 대기업들이 버티고 있는데도 틈새시장을 개척하면서 안착했다는 점이다. 대기업과는 아예 시장 접근법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기업의 소(小)품종 대량생산 방식을 버리고, 다(多)품종 개인 맞춤형 생산체제로 20대층을 타깃으로 공략했다.

책·침대 같은 전통 제품을 만들지만 판매는 온라인 위주인 것도 특징이다. 삼분의일은 온라인 쇼핑몰에 다양한 각도의 침대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 소비자들이 매장에 가지 않고도 제품의 장단점을 쉽게 알 수 있게 했다. 매장 임대료 등 영업 비용을 대폭 줄인 만큼, 가격을 확 낮출 수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레드오션 산업이라고 하더라도 제조나 유통 방식의 고질적인 문제점 1∼2가지만 개선할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며 "이런 창의적인 스타트업의 등장은 안주하던 기존 대기업들을 자극해 전체적으로 시장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