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까지 시간 드렸으니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닌 집은 좀 파시라."(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작년 8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곳곳에서 수개월 만에 집값이 2억~3억원씩 뛰는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집값 안정' 큰소리를 믿고 1년을 기다리던 수요자들이 참다 못해 너도나도 '묻지 마 매입'에 뛰어들기 시작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는 규제 만능주의에 빠져 시장을 상대로 이런저런 '규제 실험'만 하다가 끝내 집값 잡기에 실패했던 과거 사례에서 지금이라도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힘으로 시장 이긴다"는 '수퍼맨 콤플렉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작년 6월과 7월, 서울 아파트값이 각각 0.85%, 0.86% (이하 KB국민은행 통계 기준) 올랐다. 그러자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대출 규제와 세금 강화, 거래 제한 등을 망라한 고강도 대책이었다. 정부도 자신감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이 또다시 오를 기미가 보인다면 정부는 더 강력한 대책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유세 인상을 거론했다.

그 후 1년 만에 서울 아파트값은 8.7% 올랐다. 연(年) 단위로 이만큼 오른 적은 2007년 이후 처음이다. 대통령의 '주머니 속 더 강력한 대책'이었던 보유세 개편안이 나온 뒤에도 더욱 올라, 8 월에만 1.2% 뛰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비슷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 아파트값이 한 달에 1~2%씩 오르던 2005년 7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고 공언하고 각종 규제를 쏟아냈다. 결과는 이듬해 서울 아파트값 24.11% 상승이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오직 규제만으로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빚은 참사였다"며 "실패를 했으면 얻은 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그땐 규제를 찔끔찔끔 해서 시장을 못 이긴 것'이라는 잘못된 교훈만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풍선효과'만 불러오는 지역 단위 규제

정부는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 등과 같은 '지역 단위 규제'를 확대하는 식으로 집값 잡기에 나서고 있다. 결과는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로 나타났다.

8·2 대책에서 강남권 등 서울 25개 구 중 11개 구를 최고 단계인 '투기지역'으로 지정하자, 올여름부턴 나머지 강북 지역이 급등했다. 지난주에는 과천·광명·분당 등 신도시(0.28%)와 경기·인천(0.14%) 아파트값도 상승폭이 확대됐다. 이종훈 명지대 교수는 "집값이라는 풍선이 더 부풀지 않으려면 과잉 유동성과 공급 부족이라는 바람이 빠지면 되는데, 지금 정부는 오직 힘으로 튀어오른 데를 움켜쥐려는 생각뿐"이라고 지적했다.

1986년 이후 IMF 구제금융이나 리먼브러더스 사태 같은 경제 충격이 없는 상태에서 서울 아파트값이 정책 효과를 통해 장기간 안정된 시기는 사실상 1991~1995년뿐이었다. 1994년(1.2% 상승)을 제외하고 연 0~4.5%씩 내렸다. 비결은 '규제'가 아닌 '공급'이었다. 노태우 정부가 '200만 호 주택 건설'을 내걸고 1988~1992년 사이 분당·일산 등 이른바 1기 신도시에 265만 가구를 새로 지은 것이다.

권대중 대한부동산학회장은 "정부가 '대규모 공급'이라는 이미 검증된 방식을 제쳐두고 실험적인 규제를 계속해서 적용하면서 시장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등록된 민간 주택 임대사업자에게 세금 등 여러 인센티브를 줬다가 5개월 만에 다시 줄이려 하는 것이 규제 실험의 대표 사례다. 김현미 장관이 "임대 등록의 혜택을 새로 집 사는 수단으로 역이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 한 금융권 전문가는 "정책 입안자가 '역(逆)이용'이란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시장에서 인간은 원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인데 그런 부작용을 감안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거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정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다주택 투기꾼' 유령과 싸우며 시간 허비

많은 전문가들은 2015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서울 집값 상승 원인으로 유동성 과잉과 공급 부족을 꼽는다. 글로벌 저(低)금리로 세계 주택 시장에 많은 돈이 흘러들어왔고, 특히 국내에선 2010년대 초반 주택 경기 침체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대거 중단됐던 게 최근 공급 부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근엔 집값이 오르면서 전세로 살던 무주택자도 주택 구매에 나서고 있다.

정부 생각은 다르다. 김 장관은 작년 6월 취임식에서 당시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1년간 거래 3997건 중 3.4%(134건)에 불과한 29세 이하 구매자의 거래 증가를 앞세워 공급 부족이 아닌 투기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는 논리를 폈다. 지난 31일 임대주택 등록을 놓고 다주택자를 다시 압박한 것도 정부의 규제 일변도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정부가 '집값 올리는 다주택 투기꾼'이라는, 있지도 않은 유령과 맞서 싸우는 사이 주택 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