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온라인 게임에 대한 메가톤급 규제안을 발표하자 세계 게임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 정부는 지난 30일 아동과 청소년의 시력 보호와 게임 중독 예방을 위해 대대적인 온라인 게임 규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미성년자의 게임 이용 시간을 제한하고 신규 온라인 게임 허가 건수를 축소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중국 내 게임 서비스 운영과 신작 출시가 모두 정부 통제 안에 놓이게 되는 초강력 규제다. 중국 게임 시장은 약 42조원 규모로, 전체 세계 시장(154조원)의 약 27%에 달한다.

규제 발표 다음 날인 31일 중국 자국 기업이자 세계 최대 게임사 텐센트의 주가(홍콩 증시 상장)가 4.9% 하락하면서, 시가총액 22조4000억원(약 200억달러)이 하루 만에 증발했다. 중국 2위 업체 넷이즈, 미국의 액티비전블리자드, 일본의 캡콤·코나미 등 글로벌 대표 게임 기업들의 주가도 일제히 하락했다.

한국 게임업계도 중국발(發) 초대형 악재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한국 게임 업체들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인한 한·중 갈등으로 지난해 3월 이후 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권(판호)을 발급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판호를 받기 더 어려워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31일 국내 대표 게임사인 엔씨소프트, 넷마블도 주가가 2%가량 각각 하락했다. 중국은 2016년 기준 한국 전체 게임 수출(약 3조7000억원)의 37.6%(한국콘텐츠진흥원 집계)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 시장이다.

中 "시 주석이 시력 우려"…외신 "중국의 IT 기업 통제"

30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교육부와 8개 부처는 공동으로 미성년자의 총 게임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온라인게임 총량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규제 방안은 발표하지 않았지만, 청소년의 전체 게임 이용 시간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밤 12시 이후 게임을 제한하고 있는 한국의 셧다운제보다 훨씬 강력한 수준으로 추정된다. 또 신작 게임의 중국 내 서비스 허가도 강력히 통제하기로 했다.

이번 규제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발언이 발단이 됐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28일 청소년 근시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청소년들의 시력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시했다. 사실상 게임을 청소년 시력 악화의 원인으로 꼽은 것이다. 이후 이틀 만에 중국 당국이 전격적인 게임 규제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7월에도 중국의 17세 청소년이 40시간 연속해서 모바일 게임을 하다가 사망하자,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모바일 게임은 10대의 독(毒)"이라고 비판했다.

게임 산업 규제를 인터넷과 IT 산업 전반에 대한 중국 정부의 통제 강화 움직임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은 지난 3월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에 해당하는 신문출판광전총국을 4개 부서로 해체하고 당 중앙선전부가 부서들을 직접 관장하도록 했다. 게임·미디어·콘텐츠 산업에 대한 통제권이 당 선전부에 넘어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조직 개편 이후 중국은 영상, 뉴스사이트, 모바일 앱에 대한 감시·통제를 강화했다"며 "이번에 중국의 주요 미래 산업인 게임에도 손을 댄 것"이라고 했다. 게임을 통해 인터넷상에서 중국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채팅이나 음성 대화가 늘어나는 것도 중국 정부의 우려 대상으로 알려졌다.

"한국 게임 산업 당장 수출 전략 수정해야"

중국 당국은 이미 자국 업체가 만든 게임에도 6개월째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텐센트는 신작 게임 '몬스터 헌터: 월드'를 출시했다가 당국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달 판매를 접었다. 게임 부문 매출 타격으로 중국 텐센트는 13년 만에 분기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최근 2~3년간 급성장해온 한국 업체들에도 충격이 불가피하다. 당장 중국 판호 발급을 기다리는 국산 게임 10여 개는 중국 진출을 접어야 할 판이다.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은 이미 중국어 버전을 완성해놓고도, 중국 정부의 허가를 1년이 넘도록 기다리고 있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경영학과)는 "중국은 이번 규제를 계기로 더 강력하게 한국 게임의 중국 시장 진입을 막을 것"이라며 "북미·유럽 시장 수출 비중을 높이는 장기적인 전략을 짜지 않으면 생존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