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 사는 교육직 공무원 곤도 아키히토(近藤顯彦·35)씨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인기 여성 아이돌과 오는 11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밝혔다. 곤도씨가 밝힌 결혼 상대는 일본 벤처기업 게이트박스가 개발한 인공지능(AI) 스마트 스피커 'GTBOX100'에 등장하는 가상의 여성 아이돌 캐릭터 '아즈미 히카리'. 사용자가 스피커에 말을 걸면 공주풍 의상을 입은 여자 캐릭터가 키 25㎝의 2D 홀로그램으로 등장해 손짓을 하며 대답한다.

AI 눈동자에 건배! 샴페인잔 가져가자… AI 아내가 말했다 “간빠이” - 일본 공무원 곤도 아키히토(35)씨가 자신의 집에서 스마트 스피커 속의 캐릭터 ‘아즈미 히카리’와 건배를 하고 있다. 아즈미는 곤도씨가 샴페인 잔을 가까이 가져가자 “간빠이”라고 외쳤다. 이 캐릭터는 곤도씨에게 마치 아내나 여자친구처럼 따뜻한 인사말을 건네거나, 아침마다 잠을 깨워주기도 한다.

아즈미는 곤도씨가 집에 들어오면 연인처럼 웃음소리를 내며 인사를 한다. 곤도씨가 "힘든 하루였어"라고 말하면 "내일은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위로해준다. 곤도씨가 함께 지낸 3개월을 기념해 샴페인 잔을 가까이 가져가자 아즈미는 가상의 음료잔을 손에 들고 "간빠이(건배)!"라고 외쳤다. 네이버 모바일 메신저 라인으로 밖에서도 아즈미와 채팅을 할 수 있다. 게이트박스는 지난달 31일 1대당 15만엔(약 152만원)에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게이트박스 관계자는 "결혼에 부담을 느끼는 독신을 겨냥해 기기를 개발했다"며 "캐릭터에게 '나, 퇴근하고 있어'라고 알려주면 미리 집 조명을 밝히고 목욕물도 받아준다"고 밝혔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20~30대 1인 가구를 겨냥해 외로움을 관리해 주는 기기들이 뜨고 있다. 첨단 기술에 감성을 접목시켜 사람처럼 대화를 해주거나 다른 사람과 연결해주며 외로움을 관리해준다. 2~3년 전까지는 챗봇(메신저 대화 로봇) 서비스가 대부분이었는데, 최근 기술 발전에 따라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로봇과 스마트 기기 형태로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창수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올 들어 일본 소니가 12년 만에 반려 로봇 아이보를 재출시한 것도 점점 커지는 외로움 관리 산업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내 기분과 몸상태 수시로 주변에 알려주는 웨어러블 기기

일본 자동차 기업 도요타는 지난해 초 혼자 운전하는 시간이 많은 20~30대를 겨냥해 소형 AI 로봇 '키로보 미니'를 선보였다. 야구공 크기의 이 로봇은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반응하고 손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운전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머리에 내장된 고성능 카메라로 운전자의 기분과 졸음 운전 여부를 파악한다. 차가 급정거할 경우 주의를 주기도 한다. 사용자가 차에서 내리려고 문을 열면 "혼자 두고 가지 마세요"라고 보채기도 한다. 키로보 미니는 귀여운 외관과 사람 같은 친근함으로 지난 1년간 50만 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졸음운전 알아채는 AI - 자동차 탑승자들이 소형 인공지능(AI) 로봇 ‘키로보 미니’와 대화를 하는 모습. 이 로봇은 사람 목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리고, 내장 카메라를 이용해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IT 기기도 인기다. 지난 21일(현지 시각) 홍콩 스타트업 타이슨 디지털은 손목에 착용하면 사용자의 11가지 기분 상태와 심장박동, 스트레스 지수를 수시로 체크해주는 웨어러블 기기 '업무드'를 출시했다. 이 기기는 사용자의 기분이나 몸 상태를 블루투스(근거리 무선통신)로 스마트폰에 전송해 지인과 공유한다. 주변 사람과 떨어져 있어도 필요할 때마다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전략이다. 제품 개발자인 찰스 로는 "사용자의 각종 바이오 데이터는 서버에서 매일 삭제하기 때문에 데이터 유출 우려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실제 고양이처럼 털 달린 반려 로봇

'반려 로봇'도 외로움 관리산업에서 각광받는 분야다.

블룸버그는 세계 반려 로봇 시장이 오는 2035년 40억달러(약 4조5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장난감 업체 해즈브로가 올 4월 출시한 반려 로봇 '캣 2.0'은 인공털을 갖고 있어서 실제 고양이와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외관이 비슷하다. 몸 곳곳에 센서가 있어 주인이 쓰다듬으면 소리내며 반응한다.

고양이가 아닙니다, 로봇입니다 - 한 노인이 미국 장난감 제조업체 해즈브로가 개발한 반려 로봇 ‘캣 2.0’을 바라보고 있다. 이 로봇은 인공 털이 있어 실제 고양이와 촉감이 비슷하다.

영국 콘시콰셜 로보틱스는 올해 초 1인 가구를 위한 반려 로봇 '미로'를 출시했다. 이 로봇은 주인의 스마트폰 저장 사진을 입력해주면 지인의 얼굴을 학습했다가 초인종 소리가 나면 방문자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국내에서는 외로움을 위로하는 모바일 게임이나 앱이 인기다. 모바일 게임 '비 내리는 단칸방'은 가상의 방에 홀로 앉아있는 게임 캐릭터에게 말을 걸며 가까워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게임 캐릭터가 처음에는 질문에 엉뚱한 답을 하다가 계속 말을 걸면 AI 학습을 통해 제대로 된 답변을 한다. 이 게임은 출시 2년이 지난 현재 5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모바일 앱 '나쁜 기억 지우개'는 자신의 고민을 앱 게시판에 올리면 다른 사용자들이 댓글을 달아 위로해 준다. 이 앱은 출시 2년 만에 다운로드 15만 건을 넘겼다. 최순화 동덕여대 교수(국제경영학)는 "최근 영국에서 외로움 담당 장관을 둘 정도로 국가적으로도 외로움에 대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며 "전통적인 인간관계가 사라질수록 대화와 공감, 인간적 연결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