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난이 극심했던 2011년 1월, 정종환 당시 국토해양부 장관은 소형·임대주택 13만 가구 공급을 담은 ‘1·13 대책’을 발표하며 "지금 내 책상 서랍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말 내놓을 것은 다 내놨다"며 더 이상의 대책이 없음을 강조했다.

정부가 ‘전·월세 시장에 별문제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서둘러 대책을 내놓은 것보다 ‘이제 더 내놓을 것이 없다’는 정책 주무 부처 장관의 발언에 당시 여론은 싸늘했다. 하지만 전·월세 불안은 가중됐고, 이를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추가 대책들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쏟아졌다.

이듬해 9월엔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분양 주택 구입 시 양도소득세 한시 면제 등을 담은 주택거래활성화 대책을 내놓으면서도 "(이번 대책이) 이 정부의 마지막 부동산 추가 보완책이 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당시 정권교체를 불과 몇 개월 앞둔 레임덕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완벽한 대책이라 더 내놓을 것이 없다는 의미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두 전 장관은 추가 대책에 대해선 선부터 긋고 봤다.

그리고 두 번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부동산 정책을 다루는 정부 ‘기술’도 달라졌다. 지난해 6월 문재인 정부는 출범 한 달 만에 분양권 전매를 강화하는 내용의 ‘6·19 대책’을 내놓더니, 두 달도 채 안 돼 8월에는 역대 가장 강력한 규제로 평가되는 ‘8·2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서울 전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다주택자를 겨냥한 대출·세제 강화로 시장 압박에 나섰는데, 그래도 부족했는지 이후에도 ‘9·5 대책’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 ‘12·13 대책’ 등을 잇따라 쏟아내며 부동산 시장을 전방위로 옥좼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올만한 대책은 다 나온 것 같지만 그래도 들썩이는 집값에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는 추가 대책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온갖 규제를 다 쏟아낸 터라 두 부처 장관 서랍에 남아 있는 카드가 없다는 말이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데, 추가 규제 엄포부터 놓는 것을 보니 집값과의 전쟁을 어떻게든 매듭짓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읽힌다.

이미 시장엔 추가 대책을 놓고 추측이 무성하다.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추가로 지정한다는 예상부터, 재건축 가능 연한을 늘리고 다주택자 임대등록을 의무화하는 것들이 오르내린다. 다주택자에게만 향했던 양도소득세 중과 조치를 1주택자에도 어떤 식으로든 적용할 것이란 추측도 있다.

어떤 것을 내놓을지 정부 고심이 크겠지만, 정부가 타깃으로 삼는 지역의 집값과의 전쟁에선 승산이 없어 보인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가격이 정해진다는 단순한 경제 논리를 떠나, 오르는 곳이 더 오르고 청약 수요도 몰리는 곳으로만 더 쏠리는 데는 소유가 제한된 희소성이 미래 가치를 뒷받침하고, 누구나 선호하는 곳에서 살고 싶은 기본적인 욕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이 먹히지 않을 것이라 예단하는 데에는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그토록 잡으려는 집값이 왜 오르는지 정부가 원인을 정확히 모르고 있거나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인정하지 않고 집값 때리기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값을 잡겠다면 어떤 원인 때문에 오르는지 먼저 정확하게 시장을 진단해야 했지만 역대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 정부도 진단 없는 처방들만 내놓고 있다.

규제를 겹겹이 쏟아내도 3.3㎡에 4000만~5000만원에 이르는 고분양가 단지엔 청약자들이 들끓고 집값은 요지부동이다. 정부 대책이 뭐가 됐든, 수억원의 프리미엄이 붙고 앞으로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란 확신이 있는 이상 돈만 있으면 청약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게 요즘 심리다. 게다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친절하게도 분양보증 심사를 앞세워 주변 시세보다 분양가를 낮게 책정하도록 만들어 놓아 청약 전부터 로또 단지란 말이 나오는데, 수억원의 시세차익이 보장되는 상황이라면 정부 규제쯤이야 우스워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핸드백도 2만~3만원이면 살 수 있는 시장 제품이 있지만, 이보다 1000배나 비싼 2000만~3000만원짜리 명품 가방이 더 불티나게 팔리는 게 경제고 시장이다. 비싸도 내가 좋아 사겠다는 수요를 어떻게 말릴 일인가.

핸드백도, 집도 그 값어치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상품 본연의 가격 요소 외에 수요공급의 논리와 구매 심리, 소유 욕망, 기대 가치가 복합적으로 얽혀 계산된 값이 시장가격이다. 명품 소비를 막겠다고 정부가 개별소비세를 올리고 ‘사치세’나 ‘명품세’를 만든다고 해서 좋은 것을 갖고 싶은 욕망이 사라지고 희소성과 기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2000만원짜리 가방이 1000만원이 될 리도 없다. 주택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이 나와도 특정 지역 집값이 흔들리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가 녹아 있다.

그래도 정책으로 집값을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잡히면 좋겠지만 수요를 누를수록 집값 상승 반발이 더 컸던 것을 상당수가 경험으로 안다. 안타깝지만, 정부가 생각하는 추가 규제도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8·2 대책 발표 전인 지난해 7월 기재부 장관 등 정부 고위 관료들 앞에서 "부동산 가격을 잡아주면 피자 한 판씩 쏘겠다"고 약속했는데, 대통령이 쏘는 피자를 얻어먹을 기회는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