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정상화'까지 신규 노선·항공기 불허
"총수 일가 경영 잘못된 관행 이번에 꺾겠다"

지난 2012년 조현민 당시 진에어 전무가 객실승무원을 맡아 탑승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미국 국적인 조 전 전무는 항공안전법을 어기고 진에어 등기임원을 맡았었다.

국토교통부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진에어 등기이사 불법 역임 사건에 대해 진에어 면허를 유지키로 했다. 현행 항공법상 외국인인 조 전무가 2010년부터 6년 간 진에어 등기임원을 역임한 것은 면허 취소 사유다. 진에어 제재를 검토한 면허 자문회의는 면허 취소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훨씬 크다는 판단을 내놨다. 한편 진에어 신규 항공 노선 취항은 진에어 경영 행태가 정상화 될 때까지 불허키로 했다.

국토부는 17일 "진에어 면허취소 처분에 대한 검토 결과 면허 취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김정렬 국토부 2차관은 "면허 취소로 달성 가능한 사회적 이익보다 면허취소로 인한 근로자 고용불안정, 예약객 불편, 소액주주 및 관련 업계 피해 등 사회경제적으로 초래될 수 있는 부정적 파급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고 이유를 들었다.

대신 진에어의 신규 노선 취항은 국토부가 정한 경영 정상화 기준을 충족시키기 전까지 불허키로 했다. 김 차관은 "한진그룹 계열사 임원의 결재 배제, 사외이사 권한 강화, 내부신고제 도입, 사내고충처리시스템 보완(노조 조사단 등) 등 진에어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진에어에 제재를 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제재 내용은 "일정 기간 신규 노선 허가 제한, 신규 항공기 등록 및 부정기편 운항 허가 제한" 등이다.

◇"불법은 맞지만 회사 문 닫을 경우 부정적 영향 크다"

국토부는 진에어 면허 취소 여부를 놓고 국토부 안팎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면허 자문회의를 열었다. 면허 자문회의에서는 진에어가 불법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면허 취소로 갑작스럽게 회사가 문을 닫을 경우 근로자 피해 등 부정적 영향이 클것이라는 의견이 주였다.

국토부는 "면허 자문회의에서 국내 항공사 지배를 막기 위한 항공법 취지에 비해 조현민의 등기임원 재직으로 인해 항공주권 침탈 등 실제적인 법익 침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주였다"고 설명했다. 또 "장기간 정상영업 중인 항공사의 면허를 취소하게 될 경우 근로자 고용 불안, 소비자 불편, 소액주주 손실 등 국내 항공산업 발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법 위반 행위에 대해 법을 엄격하게 해석, 적용해 면허를 취소하는 게 법질서를 지키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진현환 국토부 항공정책관은 "조현민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 면허 취소가 가능하긴 하지만, 이후에 발생할 주주나 근로자가 받을 피해를 고려해 면허를 유지해야한다는 게 자문회의의 일관된 흐름이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진에어가 미국 국적의 조현민(조 에밀리 리)이 2010년 3월부터 2016년 6월까지 등기임원으로 재직한 것을 청문과정에서 사실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현행 항공안전법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은 국적항공사 등기임원을 맡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항공운송면허 취소의 징계까지 받을 수 있다.

국토부는 지난 4월 조 전 전무의 진에어 등기이사 재직이 불법이라고 공식 발표한 뒤 2개월 넘게 감사를 벌였으나 제재 수위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사실상 처분 연기를 결정했다. 국토부는 지난 6월말 진에어에 대해 청문 절차를 거쳐 면허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고 발표했다. 국토부는 지난달 30일과 이달 6일 두 차례 비공개 청문회를 진행했다. 원래 이달 중순쯤 3차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건너뛰고 지난 16일 면허 자문회의 및 면허취소심의위원회를 열어 이번 결정을 내렸다. 진 정책관은 "1, 2차 청문회를 해보니 새로운 쟁점이 더 나오지 않았다"며 "불확실성을 빨리 없애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리고 3차 청문회 없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문제 더 생기면 국민연금 소액주주권 행사"

국토부는 진에어 면허를 유지시키는 대신 조 전 전무와 조양호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전횡을 근절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요구키로 했다. 김 차관은 "진에어가 청문 과정에서 제출한 ‘항공법령 위반 재발방지 및 경영문화 개선대책’이 충분히 이행될 때까지 신규 노선 허가, 신규 항공기 등록 등을 불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진에어는 청문 과정에서 한진그룹 계열사 임원의 결재 배제, 사외이사 권한 강화, 내부신고제 도입, 사내고충처리시스템 보완(노조 조사단 등) 등을 경영 정상화 방안으로 내놨다. 진에어는 지난 14일 재발방지, 갑질 경영문화 개선 대책을 담은 7쪽 분량의 경영 정상화 계획서를 제출했다.

진 정책관은 "항공산업 경영행태는 한국 기업에서 가장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총수 일가의 잘못된 관행을 이번에 꺾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정부의 의지"라고 말했다. "총수 일가가 대한항공 및 그 계열사에 임직원으로 일하는 것을 100% 제어할 수 없지만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수준까지 경영 정상화를 요구할 것"라고 말했다. "문제가 있을 경우 국민연금이 소액주주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진 정책관은 밝혔다.

진에어 소속 항공기.

이번에 내놓은 제재 방안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국토부는 "LCC(저가항공사)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인데, 실질적으로 해당 분야 사업을 제한하는 것이라 대한항공 입장에서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면허 취소 여부 심의 중에도 진에어가 계속 신규 항공기 등록 신청을 해왔다"며 "이를 제한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는 게 진 정책관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