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의 대표적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오는 2057년 고갈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5년 전의 예상 소진 시기인 2060년보다 3년 앞당겨진 것이다. 날로 심화되는 저출산 기조와 점점 빨라지는 고령화 속도, 지지부진한 경제 성장세가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방해하는 독(毒)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구성한 민간인 중심의 정책자문단은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를 위한 대책으로 월소득의 9%인 현행 보험료율을 내년에 즉시 11%로 2%포인트 올리는 방안과 2019년부터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보험료율을 13.5%까지 올리고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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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금고갈 앞당기는 저출산·고령화·저성장

제4차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와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국민연금기금운용발전위원회는 17일 오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공청회를 열어 지난 1년간의 논의 결과를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제4차 재정계산을 실시하기 위해 지난해 8월 민간 전문가들로 이뤄진 이들 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다.

재정계산은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수지를 계산해 국민연금제도 운영 전반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2003년부터 5년 단위로 실시된다. 이번이 네 번째 재정계산이다.

4차 재정추계위에 따르면 국민연금 적립기금(추계기간 2018~2088년)은 오는 2041년까지 꾸준히 증가해 최대 적립금 1778조원을 기록하고, 2042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2057년 소진된다. 이는 2043년(2561조원)까지 기금이 불어난 뒤 2044년부터 적자를 내기 시작해 2060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됐던 2013년 제3차 재정계산 때보다 3년 빨라진 결과다.

이용하 국민연금연구원장은 지난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사전설명회에서 "출산율은 하락하고 기대수명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출산율 하락은 국민연금 가입자 감소로 이어져 보험료 수입에 악영향을 끼친다. 또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연금 수급 기간이 길어져 보험료 지출 규모도 커진다.

복지부에 따르면 3차 재정계산 당시 합계출산율은 2020년 1.35명, 2030년 1.41명 등이었다. 그러나 이번 4차 재정계산에서 전문가들은 2020년 1.24명, 2030년 1.32명 등으로 예상했다. 기대수명(여성 기준)도 3차 때는 2020년 85.7세였으나 이번에는 86.2세로 계산됐다. 90.3세였던 2060년 기대수명도 4차에서는 91.2세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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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추계위는 이런 흐름에 따라 국민연금 가입자 수가 2019년 2187만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후 점차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노령연금 수급자 수는 올해 367만명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2063년 1558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16.8% 수준인 제도부양비(가입자 수 대비 노령연금 수급자 수)는 2030년 35.0%, 2040년 62.7%, 2068년 124.1%로 상승할 전망이다.

재정추계위는 3차 대비 경제성장률이 하향 전망되면서 임금상승률과 금리가 낮게 예측된 점도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앞당긴 배경 중 하나라고 전했다. 임금상승률 하락은 단기적으로 보험료 수입 감소를 야기한다. 또 낮은 금리는 기금운용 수익률 악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2021~2030년 실질임금상승률은 3차 재정계산 당시 3.1%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 수치는 이번에 2.1%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기금투자수익률도 6.1%에서 4.8%로 하락 조정됐다.

◇ 자문단 "보험료 인상 불가피"

이날 제도발전위는 재정추계위의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위한 정책 제안을 공개했다. 제도발전위는 70년 후인 2088년에 적립배율(해당 연도의 총지출 대비 연초 적립금) 1배를 유지한다는 가정 하에 크게 두 가지의 자문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소득대체율(연금 수령액이 평생 월평균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올해 수준인 45%로 유지하는 대신 현재 9%인 보험료율을 내년부터 즉시 11%로 2%포인트 올리는 방안이다.

현행법상 소득대체율은 매년 0.5%포인트씩 떨어져 오는 2028년 40%까지 낮아지게 돼 있다. 제도발전위는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소득대체율을 45%로 맞추되 보험료를 즉각 인상해 재정 악화를 방지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보험료율은 2034년 12.31%로 한 차례 더 인상되고, 이후부터는 재정계산 결과에 따라 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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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소득대체율을 2028년 40%로 낮추도록 한 현행법 규정을 계속 유지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보험료율은 향후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13.5%(2029년)까지 인상된다. 두 번째 자문안은 보험료 지출 조정도 병행된다. 제도발전위는 2033년 65세에 맞춰져 있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2043년까지 67세로 늦추는 방안도 함께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제도발전위는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현 상황을 고려해 현행 60세 미만인 국민연금 보험료 의무납입 연령을 첫 수급 연령(2033년 기준 65세)과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최근 논란이 된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명문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기금 고갈에 대한 국민 불안감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추상적인 국가책임 규정 반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기금운용발전위는 정부가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장기 기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전략적 자산배분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정부는 이날 공청회에서 공개된 자문안을 기초로 각계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관련 부처 협의 등을 거쳐 9월 말까지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은 10월 중 국회에 제출된다.

류근혁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에 이르면 국회 입법 절차에 따라 최종안이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