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정보기술) 서비스 업체 LG CNS는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신청받은 스타트업(초기벤처기업) 육성 프로그램에 스타트업과 예비 창업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조건을 넣었다. 직원 한 명당 최대 6개월간 매달 350만원 안팎의 월급을 지급한다는 것. 지금까지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공모전을 열거나 개발비를 지원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스타트업 직원들에게 대기업 정직원에 준하는 임금을 주는 것은 처음이다. 강석태 사업개발팀장은 "팀당 3명이 원칙이지만 인원이 더 많을 때는 추가로 임금을 지급한다"며 "지방에서 올라오는 창업자들을 위해 식비와 숙박비까지 지급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서울 마곡에 있는 LG사이언스파크에 창업 공간도 마련해주고 최대 3000만원까지 개발비도 지원한다. 돈 걱정하지 말고 기술 개발에만 집중하라는 뜻이다. LG CNS는 육성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유능한 스타트업 직원들은 별도 전형을 만들어 정직원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이 프로그램에 무려 350개 팀이 지원했다. 이 회사는 또 2017년 사내 벤처로 설립된 챗봇(메신저로 대화하는 로봇) 개발 기업 '단비'를 17일 분사하고 향후 사업 파트너로 육성할 계획이다.

정직원 수준 월급 주고, 사내 창업도 적극 독려

대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스타트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유망한 스타트업을 알음알음 찾아 인수하거나 기술 공모전을 열어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정도였다면 최근엔 아예 정직원 수준의 월급까지 주면서 스타트업의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 사내 직원들에게도 파격적인 지원을 앞세워 창업을 독려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달 1일부터 최대 2억원을 지원하는 사내 벤처 프로그램 공모를 시작했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기존 업무에서 벗어나 기술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다. 김대영 SK하이닉스 상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창업 후 일정 기간 안에 실패하더라도 재입사를 보장한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도 사내 벤처 1기 모집을 2~10일 진행했다. 팀당 최대 1억7000만원을 지원하고 월급과 성과급은 동일하게 지급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2년부터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을 운영 중이다. 이미 30여 개 스타트업이 100억여원에 달하는 외부 투자도 유치했다.

서울 중구에 있는 스타트업 보육 공간 ‘SK서울캠퍼스’에서 한 스타트업 직원들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외부 스타트업과 손잡고 다양한 수익 모델을 만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3~2015년 광학 전문 스타트업 크레모텍과 함께 레이저 빔프로젝터를 출시했다. 이 회사는 미국에 1000만달러(약 112억원) 수출 계약도 맺었다. SK텔레콤은 제2의 크레모텍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 1월 스타트업 육성·협력 업무를 총괄하는 오픈콜라보센터(개방형 협업센터)를 신설했다.

스타트업 발굴해 기술 격차 좁혀야

IT 업계에서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주요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미국·중국에 뒤떨어져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AI(인공지능) 분야에서는 미국 아마존구글, 중국 알리바바가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경우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중국 IT 기업과 손잡고 기술을 개발하는 상태다. 이 외국 기업들도 대부분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해 지금과 같은 기술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미국 기술 기업을 상징하는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은 2000년 이후 스타트업에 약 200조원을 투자해 600여 개를 인수했다. 알리바바도 2013년부터 스타트업 인수에 17억2000만달러(약 1조9000억원)를 썼고 텐센트도 같은 기간 7억8000만달러(약 8700억원)를 투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IT 강국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면 대기업들이 마치 벤처투자회사 같은 투자자 역할도 맡아야 한다"면서 "우수한 스타트업 인재라면 임원급 연봉을 줘서라도 영입하는 파격적인 투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