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현대자동차는 그랜저·소나타 등 4개 차종의 디젤 엔진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하이브리드카·전기차 등 친환경차가 성장하면서 연비가 강점이었던 디젤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며 "글로벌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디젤차가 몰락하고 있다. 폴크스바겐·포르쉐·FCA ·도요타·닛산·혼다 등이 '탈(脫)디젤'을 선언하고 디젤차 생산을 줄이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인 디젤 게이트를 계기로 '클린 디젤'이란 선전 문구가 허상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최근 BMW 디젤차의 화재가 이어져 이미지가 더 나빠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수입차 업체는 한국에서 여전히 디젤차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차 업계·각국 정부, 너도나도 '탈디젤'

디젤차는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소비자에게는 '친환경차'로 알려져 있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솔린차보다 적은 저공해차라며 각국 정부의 혜택까지 받았다. 미세 먼지 주범이자 발암 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을 저감시키는 각종 장치가 개발된 덕분이다. 국내에선 2005년 정부가 세단형 디젤 승용차를 허용하고 친환경 디젤에 대한 혜택을 늘리면서 급성장했다.

BMW는 정부청사 지하주차장 주차금지 - 아우디·폴크스바겐의 디젤 배출 가스 조작 사건에 이어 최근 BMW 디젤차에서 화재가 이어지면서 디젤차에 대한 인식이 날로 나빠지고 있다. 16일 정부 세종청사 입구에서 청사관리소 직원이 BMW 차량을 세우고 리콜 대상인지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2015~2016년 폴크스바겐이 유해 가스 배출량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신뢰가 무너졌다. 최근 연이은 BMW의 화재도 배출 가스 저감을 위해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을 무리하게 작동시킨 탓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성능·연비가 좋으면서 배출 가스 규제도 충족하는 차를 만드는 데 기술적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디젤은 연료 효율이 좋아 몸집이 큰 SUV(스포츠유틸리티차)에 필수였지만, 지금은 하이브리드 SUV나 가솔린 SUV도 나온다"고 말했다.

'탈디젤'은 거대한 흐름이다. 폴크스바겐·포르쉐·피아트크라이슬러(FCA) 등은 2022년까지 모든 디젤 승용차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볼보는 2019년부터 모든 내연기관차를 중단하고 전기차만 생산하겠다고 발표했고, 도요타·닛산도 올 초 '탈디젤'을 선언했다.

유럽에선 디젤 차량의 시내 진입 규제가 진행 중이다. 독일 연방행정법원은 지난 2월 도시 행정 당국의 디젤차 시내 주행 금지 조치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 직후 독일 제2의 도시인 함부르크는 4월부터 디젤차의 일부 도로 진입을 금지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시는 2019년 이후, 이탈리아 로마시는 2024년부터 디젤차의 도심 진입을 금지한다.

폴크스바겐, 탈디젤 선언해놓고 국내선 디젤 판매 열 올려

한국에서도 디젤차 비중이 디젤차의 최고 호황기였던 2015년 45%(68만대)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35%(54만대)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수입차만 보면 상황이 다르다. 2015년 68.8%로 정점을 찍었던 수입차 내 디젤차 판매 비중은 디젤 게이트로 폴크스바겐·아우디의 국내 판매가 중단되면서 지난 1월 40%까지 줄었다. 그러나 아우디·폴크스바겐 두 회사의 판매가 본격 재개된 4~6월에는 비중이 50%까지 높아졌다. 폴크스바겐이 글로벌 시장에서 '탈디젤'을 선언해놓고, 국내에는 디젤차만 들여와 각종 할인 공세를 벌인 탓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입장에선 그동안 투자했던 디젤차 개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최대한 팔 수 있을 때까지 팔아야 한다"며 "한국은 아직 디젤차에 대한 규제나 인식이 나쁘지 않아 공략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 수입차업체의 디젤차 점유율은 디젤차의 원조 지역인 유럽(지난해 44.4%)보다도 높다. 미국은 현재 디젤차 점유율이 0.7%에 불과하다. 폴크스바겐이 미국 디젤 시장을 공략해 2014년 비중이 17%까지 늘었다가 디젤 게이트 이후 급락했다. 자동차 업계에선 "폴크스바겐이 1위를 지키는 중국 시장에선 가솔린차만 팔면서 한국 시장엔 디젤 차량을 떨이처럼 팔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이제 디젤차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며 "우리 정부도 시대에 맞게 디젤차에 대한 정책을 다각도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