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올 상반기 투자가 20.5% 줄어, 투자 증감률이 30대 대기업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재계 5대 대기업 중에서 투자가 감소한 기업은 롯데가 유일하다. 16일 기업 경영 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롯데의 투자(반기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16개 계열사 대상)는 작년 상반기 1조1123억원에서 올 상반기 8791억원으로 감소했다. 30대 그룹의 올 상반기 전체 투자는 45조6000여억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24.2% 늘었다. 삼성은 22.7%, SK는 55.3%, LG는 48.1% 증가했다. 롯데만 투자가 곤두박질쳤다.

롯데 안팎에서는 원인으로 '그룹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꼽고 있다. 신동빈 회장의 수감 생활은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신 회장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뇌물 공여 혐의로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 주요 그룹 상당수가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그룹 총수가 수감 중인 기업은 롯데가 유일하다.

롯데는 이후 국내외 투자와 인수·합병(M&A)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대규모 투자나 신규 사업 진출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해 총수 부재 상황에서 진행하기 어렵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과 유통·화학·식품·서비스 등 4대 사업부문장이 비상경영 체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상 유지에 그치고 있다. 2010년 7조5000억원이던 롯데의 투자액은 2016년 10조4000억원으로 치솟았으나, 지난해에는 7조원대로 추락했다. 올해는 작년 수준도 어려울 전망이다.

인도네시아 油化 프로젝트 무산 위기

롯데케미칼이 인도네시아에서 추진하던 4조원대 초대형 석유화학 단지 프로젝트는 올스톱된 지 반년이 지났다. 롯데 고위 임원은 "나프타 분해 시설을 포함한 유화(油化) 콤플렉스를 지어 동남아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려던 전략은 물거품이 될 위기"라며 "그룹의 미래 성장 발판 중 하나가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올해 창립 51주년을 맞은 롯데그룹의 상징이자 국내 최고층 빌딩인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모습. 신동빈 회장의 구속 수감이 6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재계 5위 롯데의 공격적인 투자는 중단됐다.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추진한 해외 개발 사업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사드 여파로 중단된 중국 선양 복합쇼핑몰(3조원대), 베트남 호찌민 인근에서 추진하는 에코스마트시티(2조원대)를 능가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회사인 크라카타우 스틸이 소유한 타이탄 인도네시아 공장 인근 부지 50만㎡를 매입했고, 신 회장 수감 직전까지 기초 설계 등 초기 작업에 속도를 내왔다.

이 상황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해외 투자 확보를 위해 다음 달 한국을 찾아 롯데와 투자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양국 정·재계 고위 인사들로 구성된 한국·인도네시아 동반자협의회 경제계 의장을 3년째 맡았고 조코위 대통령과도 개인적 친분을 쌓아왔지만, 이번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재계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도 신(新)남방정책을 펴고 있듯이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세안 국가와의 교류 확대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롯데를 제외한 국내 주요 그룹은 최근 김동연 경제부총리와의 간담회 이후 투자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삼성이 가장 많은 18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현대차(23조원)·SK(80조원)·LG(19조원)·신세계(9조원)·한화(22조원) 등의 발표가 잇따랐다. 하지만 롯데는 계획이 없다.

M&A·투자 상당수 접거나 무기한 연기

올 초 롯데는 10여 건의 M&A 프로젝트를 성사시킨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화학 기업을 대상으로 3조5000억원대 계약을 추진했고, 미국과 동남아 시장에서도 유통과 관광, 화학 등 3조원대 사업을 검토 중이었다. 국내에서는 유통·식품·서비스 부문에서 총 4조7000억원대를 투자할 방침이었다. 전체 규모는 11조4500억원에 달했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신 회장 수감 이후 대부분 인수 참여를 포기하거나 무기한 연기했다”고 말했다.

롯데 관계자는 “2년 전 미국 액시올사 인수를 포기한 뼈아픈 상황이 재연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은 액시올사를 인수해 글로벌 화학 기업으로 도약하려 했지만, 검찰 수사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며 인수 협상과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 결국 접었다.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의 공백이 장기화돼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