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1년 설립된 중소 부가통신업자(VAN사)인 코밴의 임규창 사장은 올 들어 직원들을 20% 줄여야 했다. 밴사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카드 가맹점 가입 업무와 단말기 제공, 카드 전표 수거 등을 맡는 곳이다. 임 사장은 "영업 인력을 줄인 건 지난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라며 "직원 동요가 있을까 봐 쉬쉬하고 있지만 이미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밴사가 2~3곳 되고, 가격만 맞으면 언제든지 지분을 팔고 사업을 접겠다는 곳도 있다"고 했다.

카드사와 가맹점 사이에서 결제 대행을 담당하는 밴 업계가 수익성 악화, 경쟁 심화, 업무 축소라는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의 수수료 체계 변경으로 수익성은 뒷걸음질치기 시작했고, 첨단 IT를 활용하는 핀테크 업체가 기존 업무 영역에 점점 침투해와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서 제로(0) 수수료 결제 수단으로 관제(官製) 페이 도입을 추진하면서 속앓이가 더 심해졌다. 한 중소 밴사 대표는 "수십년간 신용카드 활성화를 목표로 전국 곳곳에 카드 결제 인프라를 뿌려 왔는데 그런 수고는 몰라주고 앉아서 중간 마진만 챙기는 적폐 세력으로 몰고 있다"면서 "소상공인 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운 정책들이 되레 소상공인인 20만 밴 업계 종사자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생존경쟁 내몰린 20만 밴 종사자

밴사의 수수료 수입은 카드 결제의 소액 다건화가 진행되면서 급속도로 커졌다. 건당 수수료가 고정된 정액제(100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7월 31일부터 밴 수수료는 결제 금액이 높을수록 수수료가 비싸지는 정률제가 적용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건당 결제 금액의 평균 0.28%가 밴 수수료다. 카드 결제액이 5000원이든 1만원이든 밴 수수료로 각각 100원씩 들어왔던 것이 이제는 각 결제 금액에 0.28%를 곱한 14원과 28원으로 수입이 줄었다. 소액 결제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정률제 하에선 밴사의 수입이 급격히 줄게 된다.

주거래처인 카드사들이 비용 절감에 나서면서 밴사의 업무 영역이 축소될 여지도 크다. 정부가 신용카드 최저 수수료율(0.8%)을 적용하는 대상을 꾸준히 넓혀 현재 영세·중소 가맹점 비중은 76.5%에 달한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카드사들은 원가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신한카드는 지난해 밴사에 위탁하던 매출전표 매입 업무를 IT업체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종이 매출전표를 전자문서로 바꿔 데이터해 정리하면 비용이 건당 18~20원에서 5~6원까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밴사의 거센 반발로 지난 4월 중단됐다.

◇트리플 악재로 생존기로

정부의 잇단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밴사의 수익 지표엔 이미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밴 수수료 정률제가 시행되기도 전인데, 중계 수수료 수익은 1.3% 감소했다. 지난해 7월 정부가 영세 가맹점 수수료율을 최대 1.5%에서 0.8%로 낮춘 데 따른 것이다. 향후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하는 수수료 제로인 결제 수단이 경쟁자로 등장하면서 고민은 더 깊어진다. 박성원 신용카드밴협회 사무국장은 "철도와 버스 중 버스로 수요가 몰리면 철도회사는 물론, 철로를 까는 업체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 주도 페이가 성공하려면 기존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과의 연동 작업이 필요할 텐데, 이 과정에서 밴사들이 할 일은 없을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부가통신업자(VAN사)

카드사와 가맹점을 이어주는 곳으로, 카드 가맹점 가입 처리와 카드 단말기 제공, 카드 전표 수거, 단말기 고장 수리 등의 업무를 맡는다. 이달 현재 금융 당국에 24곳이 등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