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CEO(최고경영자)나 등기 임원이 아니라도 연봉 5억원 이상 받는 직원 이름과 보수 내역을 공개하도록 하자 평직원인데도 오너보다 수입이 더 많은 월급쟁이들의 사례가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증권사 차장이 22억원대 보수를 받고, 스톡옵션 행사로 49억원을 번 게임 업체 직원 사례도 있었다. 평직원들의 '연봉 반란' 루머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기업의 반기 보고서 제출 마감일인 14일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한국투자증권의 김연추 차장이 화제가 됐다. 30대 후반의 김 차장이 올해 상반기 22억30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김 차장은 '오너'인 김남구 한투금융지주 부회장보다 9억원을 더 받았고, 유상호 사장보다도 2억여원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이번 반기 보고서부턴 보수가 5억원 이상이라면 미등기 임원과 직원까지 상위 5위의 연봉을 공개하게 되면서 고액 연봉을 받는 직원들의 신원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김 차장의 급여는 1억1100만원이었지만 상여금으로 21억1900만원을 받았다. 그가 받은 상여금은 지난해 성과급 12억원에 2014년부터 3년간 발생한 성과급 중 이연(移延)된 9억여원이 합쳐진 것이다.

김연추 차장이 높은 상여금을 받은 것은 그가 만든 '양매도 상장지수증권(ETN)'이 막대한 수익을 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 ETN은 코스피200지수가 한 달 동안 위아래로 5% 이내의 범위에서 움직이면 수익을 낼 수 있게 만들어진 파생 상품이다. 작년 5월에 상장돼 현재까지 8400억원쯤의 자금이 몰렸다.

한투증권 관계자는 "최고의 인재가 최고의 성과를 얻고, 그 성과에 대해 최고의 보상을 한다는 경영 철학에 따라 확실한 보상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증권사 직원은 "ETN은 물론이고 ELS(주가연계증권), ELW(주식워런트증권) 등 파생 상품 운용에는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 차장 이외에도 고액의 보수를 받은 직원들이 다수 있었다. SK증권에서는 부장급 직원 2명이 상반기 각각 8억7700만원, 7억2600만원을 받았고 유안타 증권의 차장급 직원 2명도 7억원 가까운 보수를 챙겼다. KTB투자증권의 한 과장급 직원도 7억2200만원을 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IB(투자은행) 혹은 기관 간 채권 거래 등을 중개하는 업무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둬 높은 보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 업계에서는 스톡옵션으로 돈방석에 앉은 임직원들이 여럿 나왔다. 카카오에서는 스톡옵션을 행사해 막대한 차익을 얻은 직원이 상반기 급여 1위를 차지했다. 카카오의 장봉재 API플랫폼 담당 리더는 스톡옵션 행사 차익으로만 49억500만원을 벌어들이는 등 총 49억8800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장리더는 카카오 창업 초기부터 합류했던 개발자 중 한 명이다. 역시 카카오 초기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윤위훈 AI서비스 기획 담당 역시 스톡옵션을 행사해 13억8800만원의 차익을 벌었다.

바이오 업계에서도 신라젠의 배진섭 부장과 박진홍 과장은 각각 49억2500만원의 스톡옵션 행사 차익을 거뒀고, 셀트리온의 이승기 차장 등도 10억원 이상의 스톡옵션 차익을 번 것으로 나타났다.

직급에 상관없이 능력만 있으면 월급쟁이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청년들이 희망을 품게 된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있지만, 일반 직원의 연봉을 공개하는 데 대해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실명과 연봉이 공개되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