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실험 1년 결과가 한전 상반기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한전은 올 상반기 8147억원 영업적자를 냈다. 6년 만에 최악 실적이다. 원료비가 가장 싼 원전 이용률을 낮추고 값비싼 석유·석탄·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늘린 탓이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원가가 비싼 원료 대신 싼 원료를 더 많이 썼겠지만, 공기업인 한전은 정부 정책에 따라 원전 가동을 줄이고 외국에서 들여오는 값비싼 화석연료 비중을 크게 높였다. 경희대 정범진 교수는 "정부의 원전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멀쩡한 공기업 한전을 망가뜨린 것"이라며 "한전의 적자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는 만큼 정부가 이제라도 탈원전 노선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 이용률 하락… 한전 적자 누적

원전 가동을 줄인 게 한전 적자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이다. 원전 이용률은 올 상반기 58.8%로 작년 동기(74.7%) 대비 15.9%포인트 줄었다. 3월엔 52.9%까지 떨어졌다. 원전은 우리나라의 가용 에너지 자원 중 가장 단가가 저렴하다. 올 상반기 원자력발전 단가는 1kWh(킬로와트시)당 61.9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61.23원)에 비해 거의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올 상반기 한전이 원자력발전 원료 구입비로 쓴 금액은 총 3조5304억원으로, 작년 상반기(4조5366억원)보다 1조62억원(22.2%) 줄었다.

대신 한전은 국제 유가(油價) 상승으로 가격이 올라간 석유·석탄·LNG발전 원료 구입을 크게 늘렸다. 석탄발전은 작년 상반기에 비해 5.2%, LNG는 37.9%나 원료 구입이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한전의 상반기 전력 판매 수익은 작년보다 1조130억원 줄었다. 만약 한전이 원전을 작년 상반기 정도로만 돌렸다면 올 상반기에 적자는 면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자력발전 단가는 LNG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전 적자가 탈원전 정책에 따른 결과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 가동이 줄어든 건 원전 안전 점검을 대폭 강화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결국 정부도 원전 이용률을 다시 높이기로 했다. 한전은 원전 이용률을 3분기 77.2%, 4분기 77.5%, 겨울철 난방 수요가 몰리는 12월엔 81.3%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물론 원전 가동률을 높이는 것도 단기 처방일 뿐이다. 탈원전 정책이 계속되면 원전이 줄어든다. 2023~2029년 사이 기존 원전 10기의 수명 만료가 차례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동시에 2021년 이후 착공 예정이던 신규 원전 6기 중 4기는 이미 건설이 백지화됐고, 나머지 2기도 비슷한 운명에 처해 있다. 이대로 가다간 에너지 공급에 큰 차질이 빚어져 국가적 재앙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기료 인상 압박 커져

한전의 부채도 눈덩이처럼 늘어가고 있다. 한전의 누적 부채는 6월 말 현재 114조5700억원에 달한다. 부채 비율(연결 재무제표 기준)은 2016년 말 143.4%에서 작년 말 149.1%로, 그리고 올 2분기엔 160%로 증가했다. 적자가 누적되자, 한전과 한전의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 등은 올해 총 12조8460억원에 달하는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문제는 공기업인 한전의 부채가 결국 국민 부담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한전 부채를 줄이려면 전기료를 올리거나 한전이 흑자를 내서 메우는 수밖에 없다. 전력 공급 독점 공기업인 한전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전의 3분기 실적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통상 한전은 3분기 여름철 냉방 수요에 따른 판매량 증가와 높은 판매 단가로 매년 가장 높은 분기 영업을 기록해 왔다. 하지만 정부가 7~8월 주택용 전기 요금의 한시적 누진제 완화와 사회적 약자 지원 확대 방침을 밝히면서 수익성 개선 여부가 불투명하다. 정부 방침에 따라 한전은 3000억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

한전이 올 상반기 적자 요인으로 든 국제 유가 상승세도 하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오는 11월 5일부터 이란의 원유 수출을 금지하는 제재를 발동하기로 하면서 국제 유가는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천대 손양훈 교수는 "한전이 적자를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며 "생산 비용이 가장 저렴한 원전 가동을 늘리든가, 아니면 전기료를 인상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