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보호자를 범죄자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다른 나라에서는 허용하는 의료용 대마를 국내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해주세요.”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는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편과 모르핀 등 대마보다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는 의료 목적으로 사용이 허용되는 반면, 현재 대마는 의료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의료용 대마 합법화를 촉구했다.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가 의료용 대마 합법화 필요성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 단체는 한국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가 설립한 비영리사단법인으로, 오는 12일 공식 창립된다. 사진 왼쪽부터 강성석 목사, 황주연 의사, 권용현 의사, 김미영 씨(한국1형당뇨병환우회 소속).

대표적인 의료용 대마로 알려진 칸나비디올(CBD·cannabidiol)’은 대마 오일의 주성분으로 환각 효과는 없지만 뇌질환이나 통증 완화에 효과가 있어 의료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 의약품으로 허가받은 대마 성분 의약품은 마리놀(성분명 드로나비놀), 세사메트(나빌론), 새티벡스(칸다비디올/THC), 에피디올렉스(칸나비디올) 등이 있다.

◇ 뇌전증 환아 둔 엄마이자 의사의 고백

“의료용 대마는 국내 수많은 환아들에게 필요한 치료제입니다.”

이날 난치성뇌전증(간질)을 앓고 있는 아이의 엄마이자 의사이도 한 황주연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황씨의 아이는 뇌전증 진단을 받고 이미 약물치료와 식이요법은 물론 뇌수술까지 한 상태이지만 치료 후에도 끊임없이 발작 증상 등이 재발했다.

황 씨는 “의사인 남편과 함께 치료 방법을 찾다가 ‘카나비노이드’를 알게 됐고, 해외 직구를 통해 대마에서 추출한 ‘칸나비디올(CBD)오일을 구매했다”며 “이를 아이에게 먹인 이후 아이의 인지 상태가 뇌파검사 상으로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CBD오일은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편의점에서도 판매하는 건강보조식품이다. 인체의 엔도카나비노이드(endocannbinoids) 시스템 활성화를 위해 체내 성분과 똑같은 카나비노이드 성분이 함유돼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CBD오일과 같은 의료용 대마 유통은 합법이다.

하지만 황씨는 두번째 해외 직구를 했을 당시 세관에서 적발돼 검찰 조사까지 받게 됐다. 그가 구입한 약품을 압수당하고 기소 유예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해외에서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서 CBD오일을 구매할 수 있다.

황씨는 “처음 구매한 약을 복용한 이후 아이가 뇌파검사 상으로도 효과를 봤고, 부작용도 없었다”며 “국내 규제에 가로막혀 아이를 치료하지 못하는 현실에 너무나 답답하고 또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CBD오일은 마약도 아니고 환각작용도 없고 뇌전증뿐 아니라 식이장애, 피부염 환자, 말기 암환자 등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물질로 알려져있다”면서 “마리화나라는 대마와 분리해 의료용 대마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합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아이를 이정임씨는 “아토피염 부위에 CBD오일을 바르는 것 만으로도 가려움증이 많이 완화될 수 있다고 하는데, 외국에서는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수입이 완전히 막혀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 설립을 주도적으로 돕고 있는 강성석 목사(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 소속)는 “의료용 대마가 뇌 질환에 좋다는 건 환자 가족들이 더 잘 알고 있다”며 “이들에겐 너무나도 절박한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 해외 편의점서도 파는 CBD오일…국내에선 ‘마약’

해외에서는 건강보조식품처럼 구매되는 ‘칸나비디올(CBD)오일’이 국내에서는 사실상 ‘불법’이다.‘마약류’인 대마에서 추출했다는 이유에서다.

의사이자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 초대 회장을 맡게 될 권용현씨는 “뇌전증, 파킨슨병, 우울증 등의 환자의 경우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카나비노이드 물질을 보충해줘야하는데, 이게 풍부한 식물이 바로 대마초”라며 “CBD오일의 경우 환각작용 등 중대한 문제가 없어 마약으로 여겨질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달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한국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의료용 대마 의약품 등을 수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절차가 복잡하고 긴 시간이 걸리는 등 의학의 발전과 환자와 보호자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 단체의 주장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환자가 자가 치료용으로 '대마' 성분 의약품이 필요하다는 의사 진료 소견서를 받아 식약처에 수입·사용 승인을 신청하면 환자에게 승인서를 발급한다. 또 환자가 해당 승인서를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직접 제출하면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해외에서 허가된 '대마' 성분 의약품을 수입해 환자에게 공급한다.

하지만 환아 엄마 황주연씨는 “희귀의약품 처방을 받아 식약처에 신청하는 절차만 2개월 이상 걸릴 뿐더러 식약처가 내놓은 방침은 ‘앞으로 추진하겠다’는 식의 설익은 계획일 뿐 실효성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 올림픽 도핑에서도 제외…대마 치료 효과 입증 잇따라

이미 의료용 대마 합법화 움직임은 세계적으로 일고 있다. 대마의 다양한 치료 효능이 의학적으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칸나비스 사비타 엘(Cannabis Sativa L). 대마초.

앞서 6월 초 세계보건기구(WHO)가 의료용 대마의 효능을 인정하고, CBD오일이 뇌전증(간질), 알츠하이머(치매) 등에 효능이 있다고 밝힌 보고서를 발표했다. 또 미국식품의약국(FDA)은 뇌전증 치료 효과가 입증된 대마 성분 치료제 에피디올렉스(Epidiolex)에 대해 의약품으로 최초 승인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현재 29개 주에서는 CBD오일을 비롯한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하고 있으며, 캐나다의 경우 2001년부터 암치료를 위한 화학용법으로 인한 메스꺼움이나 에이즈환자의 식욕 부진 등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 목적의 대마 사용이 허용됐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도핑 검사 판정 기준이 되는 세계도핑방지기구 금지약물 목록에서도 대바 성분 중 ‘칸나비디올’은 예외로 명시됐다.

권용현 초대 회장은 “한국은 의료 목적의 대마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데다 규제 및 수사당국도 ‘불법이니 조사받아라’는 식으로 환자 가족에게 대응하고 있다”며 “사람의 몸이 법에 맞춰 존재하는 것이냐, 사람이 살고 보는게 우선 아니냐”고 비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오남용 문제 등 우려에 대해서 권 회장은 “미국과 캐나다, 유럽등에서 발생하는 마약 문제가 의료용 대마 합법화로 인한 것처럼 보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면서 “대마의 THC성분을 처음 발견한 나라이기도 한 이스라엘의 경우 의료용 대마 사용을 합법화하고 증상에 따른 사용 및 구입량, 재배과정 등에 대해서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회장은 “사용이 시급한 국내 환자를 위해 정책을 마련해야한다”며 “오남용 예방과 투명한 유통 관리를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는 등 예방·관리를 위한 시범사업을 우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 초 신창현·박영선 의원 등 국회의원 11명이 외국에서 효능이 입증된 의료용 대마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승인하에 허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진전없이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