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활력의 젖줄 역할을 하는 투자가 2000년 이후 18년만에 넉달 이상 연속적으로 감소하는 등 하반기들어 경기가 급격하게 주저앉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가 결국 사실상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철도, 도로, 항만 등 토목 SOC 예산을 상당히 감축하겠다는 당초 예산 편성 계획도 수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급증했던 반도체 투자가 조정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SOC 예산 감축기조를 고수할 할 경우, 투자위축으로 인한 경기하강이 본격화 될 수 있다는 민간 전문가들의 지적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내년 예산 규모도 올해(428조8000억원)보다 대폭 증액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보다 10% 가까이 증액된 470조원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이와 관련, “내년 예산 총지출 증가율을 원래 생각하고 있었던 7%중후반대보다 더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소득층 지원 예산과 경기위축에 대응하기 위한 각종 SOC예산이 겹치면서 초(超)대형 수퍼예산 편성이 불가피해 보인다.

◇내년 예산안 470조원 부근에서 결정될 듯…10년만에 최대 증가율 기록할 수도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2017~2021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19년 예산 총지출 증가률을 5.7%로 계획했었다. 올해 428조8000억원인 예산 규모를 내년에는 453조2000억원까지 늘리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5월말에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내년 예산 총지출 증가율을 7%중후반대로 높여 460조원대 예산 편성을 공식화했다. 소득 하위 20%와 40%에 속하는 저소득층 소득이 올해 1분기에 13.3%, 2.9%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 재정지출 확대 논의에 불을 지핀 결과다. 저소득층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등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데 정부 내 컨센서스가 모인 것이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2분기 이후 제조업 생산과 투자 등의 지표가 악화되면서 경기가 눈에 띄게 하강국면으로 진입한 것이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6월 산업활동 동향에서 설비투자가 넉달 연속 하락하고, 건설기성(이미 시공한 실적·-3.6%)과 건설수주(-18.3%)가 심각한 부진에 빠져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재정투입을 통해서라도 급격한 경기 둔화를 방어해야 한다는 논의에 힘이 실리게 됐다. 김 부총리가 내년 예산 총지출 증가율을 ‘7% 중후반대 보다 더 높게’라고 제시하며 초(超)수퍼예산 편성을 예고한 것은 이 같은 논의 결과물이다.

총지출 증가율이 ‘7%중후반대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내년도 예산안은 466조원~47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예산증가율이 8~10% 에 이를 것이라는 가정 하에 추정한 규모다. 8% 중후반대의 예산안 총지출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음해 본예산을 10.6% 확대편성한 지난 2008년 이후 10년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건설업 취업자 급감에 SOC 예산 감축 기조 수정

정부가 SOC 예산 감축 기조 수정에 나서게 된 이유는 건설투자 부진이 고용경기 급랭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6월 건설업 취업자는 전년 동월대비 각각 4000명과 1만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5월과 6월 16만9000명과 15만4000명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1년 사이 10분의 1토막 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일용직·임시직 근로자가 감소하고 있는 것도 건설경기 부진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 유발효과가 큰 정부 SOC 사업을 과도하게 줄이면 일자리 가뭄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당초 계획했던 ‘7%중반대’에 비해 약 5조~8조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예산 증가액은 대부분이 건설투자 사업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김 부총리는 “내년 철도, 도로 등 전통적인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은 작년에 정부가 국회에 제출했던 규모인 17조7000억원 이상으로 편성하고, 도시 재생·주택과 관련된 생활 혁신형 SOC 예산은 금년도 예산 8조원 보다 대폭 증액하겠다”면서 “전통적인 SOC예산과 생활혁신 SOC를 합친 (건설투자 관련)광의의 SOC 예산은 올해 보다 상당히 늘어나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업계에서는 내년 예산안에서 SOC 등 건설투자 관련 예산이 올해보다 최소 5조원 이상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목적 체육관, 지역 커뮤니티 시설 등 생활투자형 SOC 예산이 올해 6조원 안팎에서 7조원 이상으로 늘어나고, 도로와 토목 관련 전통적인 SOC 예산이 18조원 이상으로 편성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 추정치다. 김동연 부총리가 언급한 도시재생 등 생활혁신형 SOC 에산이 올해 예산(8조원)보다 얼마나 더 늘어날 지가 건설투자 예산 증가 규모를 결정할 전망이다.

이홍일 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주택 경기가 규제 때문에 안 좋아지고, 정부 SOC 예산이 크게 줄면서 건설경기 위축 속도가 과거에 비해 두 배 이상 빨라졌는데. 정부가 건물 짓는 데 투입되는 생활형 SOC 예산을 늘리는 것은 건설투자 위축을 어느 정도 방어해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