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차량 화재 사태와 관련해 국토교통부의 늑장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올해 초부터 BMW 차량 화재가 잇따랐지만 무대책으로 일관하다가 사태를 이 지경까지 키웠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법적 근거가 없다던 운행정지 명령 카드를 뒤늦게 꺼내 드는 등 소극적 뒷북 대응도 이어지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리콜 제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

◇ 올해 들어 34대 불탔는데, 국토부 이제야 총력 대응 밝혀

8일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BMW 차량 화재는 1월 3대, 2월 2대, 3월 1대, 4월과 5월 각각 5대, 7월 12대, 8월에는 지난 7일까지 6대에서 발생했다. 올해 들어서만 총 34대에서 불이 난 셈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 빈번하게 차량 화재 사고가 발생했지만, 국토부는 지난달 26일에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BMW의 자발적 리콜 시행을 발표했다. 주무 부처의 담당 업계 관리가 얼마나 소홀하고 소극적이었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문제는 리콜이 일어난 이후에도 국토부 대응이 미흡했다는 점이다. 국토부는 안전진단을 완료하는 데 10개월이 걸린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화재 차량의 부품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지난 3일 김현미 장관 명의의 입장문을 발표하면서도 책임을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국토부는 “BMW가 현 사태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책임있는 자세로 임할 것을 촉구한다. 조사에 필요한 관련 부품 및 기술자료 등 모든 자료를 빠짐없이 신속하게 국토부에 제공해 주기 바란다”며 BMW만의 문제로 몰고 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사진 오른쪽)이 8일 경기도 화성시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화재가 난 BMW 차량의 부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후 긴급 안전진단을 받은 차량마저 지난 4일 화재가 나면서 관리·감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국토부는 지난 5일에서야 불이 난 차량을 안전진단했다는 센터로 담당자를 보내 현장 실태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김현미 장관이 사태 해결에 직접 나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국민의 눈총을 샀다. 김 장관은 8일 BMW 차량 화재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자동차안전연구원(경기도 화성)을 뒤늦게 방문해 국토부가 엄정한 대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이 BMW 차량 화재 사고와 관련해 직접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26일 국토부가 BMW의 자발적 리콜 조치를 발표한 지 13일 만이다.

현재 BMW는 520d 등 총 42개 차종 10만6317대에 대해 자발적 리콜 조처를 하면서 긴급 안전진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3시 기준으로 총 4만740대가 안전진단을 받았다. 이 중에서 1147대는 부품교체가 완료됐다. 화재 위험이 확인됐지만 부품 부족 등으로 인해 제때 정비를 받지 못하고 렌터카 대여 처리된 차량은 2579대다.

◇ 말 바꾸기식 소극적 대응…내놓은 대책마저 실효성 논란

김 장관은 이날 “아직 안전 진단을 받지 않았거나 안전진단 결과 화재 위험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 BMW 차량에 대해 운행정지 명령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부는 그동안 차량 화재사고 우려를 이유로 운행정지를 명령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김채규 국토부 자동차관리관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운행정지 명령의 경우 천재지변, 사변 등의 상황에서 국무회의 심의를 통해 발동할 수 있지만, 화재 사고가 천재지변에 해당되는지 아직 근거가 없어 운행정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신속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이었던 일찌감치 검토했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꾼 것이다.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법적 근거는 없지만, 자동차관리법 37조를 적극적으로 유권 해석해 운행정지 명령을 내린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자동차관리법 37조에 따르면 시장·군수·구청장이 안전운행에 지장이 있다고 인정된 차량에 대해 정비를 지시하면서 운행중지를 명령할 수 있다.

2일 오전 11시 47분쯤 강원도 원주시 영동고속도로(강릉 방면)에 BMW 520d 차량 엔진 부분에서 불이 나 차량이 타고 있다. 올 들어 28번째 발생한 BMW 화재 차량이다.

한편 국토부는 장기적인 해결책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포함한 ‘자동차 리콜 제도 개선방안’을 준비한다고 밝혔다. 이달 중 법령 개정 등 관련 절차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제도 강화라는 방향성만 정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들여다보는’ 수준에 멈춰있다. 자동차 사고와 관련해 제도를 강화하더라도 이것이 하나의 판례로 다른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 부처 간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자동차 리콜 관련 제도를 전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사태 해결에 가장 적합한 부분을 개선한다는 방향성만 정했을 뿐 구체적인 것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 “제조물책임법 개정이 가장 간단”…국회 통과·소급적용 여부는 ‘과제’

정부 안팎에서는 국토부가 추진하기 가장 손쉬운 해법으로 지난 4월부터 시행 중인 제품 결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소비자 권익 강화 측면에서 개정하는 것을 꼽는다. 제조물책임법(제3조)에 따르면 제조업자가 결함을 알면서도 조치를 취하지 않아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 재산에 피해를 입히면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해야 한다. 이 중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 재산에 피해’ 부분을 ‘소비자 피해’로 확대하는 식으로 개정해 피해 보상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BMW 차량 화재 사고의 경우 다행이지만 인명 피해가 없어 제조물책임법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적용하기 어렵다. 불이 난 차량 소유주들은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 법을 ‘소비자 피해’로 개정하거나 제품에서 유발된 피해에 대한 보상 규정까지 별도 조항으로 넣으면 BMW 사태의 실질적인 해결책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이 법을 개정하더라도 국회를 통과해야 해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관계 부처가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지만, 법령 정비를 마무리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회가 이미 자동차관리법 개정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어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개정에 속도를 낼 가능성은 있다. 국회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포함해 자동차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있을 때 원인을 신속하게 규명토록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또 사후 조치에도 제작사가 최선을 다하도록 하고, 결함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서 제작사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BMW 주차금지 -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입구에 최근 화재 사고가 잇따르는 BMW 520d 차량의 지하 주차장 주차를 금지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법이 개정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또 있다. 개정된 법을 이번 BMW 사태에 소급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정하는 것이다. 현행법이 강화되더라도 소급 적용 여부를 명시하지 않을 경우 BMW는 뚜렷한 제재 없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소급적용을 하더라도 문제다. 특정 제조사에 대한 처분을 내리기 위해서 법을 과거 내용까지 소급적용할 경우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BMW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전을 펼치며 처분 시기를 늦출 수 있다.

김현미 장관은 “정부는 사고 처리 과정을 촘촘하게 재정비하고, 소비자의 권리가 안전과 직결된다는 관점에서 관련 법과 제도를 종합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