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나 개선을 요구하는 여론이 적지 않으므로 국민들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 개선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연일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폐지해달라는 요구로 도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었다.

하지만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7일 폭염에 따른 한시적 전기요금지원대책을 발표했을뿐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백 장관은 “앞으로 국회와 상의하면서 누진제를 포함해 전기요금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개편 방안을 공론화 과정을 거쳐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력수급이 불안정하던 시절인 지난 1974년 도입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45년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는 중국, 일본, 캐나다, 호주보다 과도한 누진율은 개선될 수 없는걸까.

서울 용산구의 한 주민이 다세대 주택에 설치된 전기계량기를 살펴보고 있다.

◇ 전력수요 낮게 잡은 정부, 누진제로 억제?

지난달 24일 오후 5시 50분 최대 전력수요는 9272만6000kW로 예비력이 684만4000kW까지 떨어졌다. 정상(예비력이 500kW 초과인 상태)보다 불과 184만4000kW가 많은 수준이었다.

문제는 앞으로도 폭염·한파와 같은 이상기후가 지속되면 전력수요가 급증할텐데, 전력공급을 늘리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최대 전력수요 전망치를 1억50만kW로 제시했다. 올해 최대 전력수요보다 약 777만kW가 많은 정도다.

정부가 탈원전(원자력발전소)을 선언한 상황에서 발전소를 더 짓지 않으면서도 전력수요를 감당하는 방법은 전기 사용을 억제하는 것이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에너데이터(Enerdata)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전력소비량은 534테라와트시(TWh)로 전 세계에서 7위를 기록했다. 2015년 9위, 2016년 8위로 매년 순위가 상승하고 있어 ‘에너지 과소비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2015년 기준 한국전력(015760)의 전력판매 비중에서 가정용은 13.6%에 불과하다. 산업용(56.6%)과 일반용(21.4%) 등의 비중이 더 크다. 따라서 가정용에만 적용되는 누진제가 전기 사용을 억제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에너지IT학과)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경제논리에는 맞지 않지만, 수요관리에 효과가 있다는 명분으로 국민들이 수용했다”면서 “발전소를 덜 짓기 위한 방편으로 누진제를 활용했지만 국민들의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향후 전기요금 개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전력판매 독점 한전, 누진제 폐지하면 실적에 직격탄

지난 2016년에도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왔었다. 당시 한전은 전기를 많이 쓰는 사용자를 막기 위해 전기요금 누진제가 필요하다면서 폐지에 반대했다. 결국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2016년 말 6단계, 11.7배(누진율)에서 3단계, 3배로 완화됐지만 제도 자체는 유지됐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는 해외 국가의 경우 대부분 2배 이하의 누진율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현행 누진율(3배)이 다소 높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중국은 3단계 1.5배이며, 일본은 3단계 1.3~1.6배다. 캐나다는 2~3단계 1.1~1.5배이며, 호주는 2~5단계 1.1~1.5배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한전이 산업용에는 없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결사적으로 방어하는 이유는 실적에 직결되기 때문”이라며 “누진제 폐지로 전기사용이 늘어나 수익이 확대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법무법인 인강의 곽상언 변호사는 “전기는 누구나 공평하게 사용해야 하는 에너지로 차등적 요금징수는 명백한 차별”이라며 “합리적이고 선진화된 전기요금 체계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