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한국전력 주가가 거듭되는 악재에 좀처럼 반등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수익이 줄어든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영국 원전 건설 우선협상권 박탈, 북한산 석탄 국내 반입 의혹 등 부정적인 이슈가 잇달아 터지면서 한전 주가를 억누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정부가 7~8월 가정용 전기요금 인하까지 결정하자 한전 주가는 7일 또 한 차례 휘청였다. 전기료 대란을 막기 위한 조치이긴 했으나, 한전 주식을 들고 있는 소액주주들은 “포퓰리즘 정치를 위해 한전 주주를 희생시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조선DB

◇ 한전 시총 닷새만에 약 2조원 증발

7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한국전력(015760)은 전날보다 1.93%(600원) 떨어진 3만450원에 장을 마감했다. 외국인이 230억원, 기관이 112억원 순매도하며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 외국인은 3거래일 연속, 기관은 닷새 연속 한전 주식을 내다팔았다. 개인만 34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이날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폭염에 따른 전기요금 지원대책’을 발표한 것이 한전 주가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백 장관은 “7~8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 구간을 일시적으로 상향 조정해 가구당 평균 19.5%의 전기요금 인하 효과를 주겠다”고 밝혔다.

누진제 완화는 상당수 가구에는 반가운 일이지만 한전 실적에는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미 한전은 최근 2분기 연속 10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탈원전 정책의 일환으로 값싼 원전 가동률을 75.2%에서 59.8%로 크게 줄이고, 석탄·LNG 등 상대적으로 비싼 화석연료 발전소에서 더 많은 전기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한전의 전기판매수익은 2조300억원인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1조100억원 줄어든 수치다.

수익 감소와 함께 주가도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해 4월 말 4만5000원을 웃돌던 한전 주가는 현재 3만원 붕괴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주가 부진과 함께 시가총액도 줄어들었다. 지난달 31일까지만 해도 21조3774억원이던 한전 시총은 8월 7일 종가 기준 19조5478억원으로, 5거래일 만에 1조8296억원이나 감소했다. 코스피 시총 순위도 삼성생명(032830)에 밀려 15위로 내려앉았다.

한전 주가에 부정적인 이슈는 실적 뿐만이 아니다. 도시바는 지난달 25일 한전에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지분 인수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여기에 한전 자회사인 남동발전은 이달 1일부터 관세청 조사를 받고 있다. 남동발전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북한 석탄 약 9700톤을 러시아산으로 위장해 국내 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 한전 투자자들 “정부 맘대로 주주가치 훼손”

거듭되는 악재에도 증시 전문가들은 한전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과거 사례에 비추어볼 때 누진제 완화가 한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혹서기가 종료된 이후에는 전기요금 인상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강 연구원은 “누진제 완화 대책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며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낮은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할 때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은 연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반 투자자들의 분위기는 낙관적인 증권가와는 180도 다른 상태다. 투자자 A씨는 인터넷 주식커뮤니티에 “아무리 공기업이어도 상장한 회사라면 주주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며 “정부 멋대로 정책을 바꾸는데 한전 재무구조가 좋아질 수 있겠는가”라고 적었다.

이 투자자는 “기업과 주주 가치를 이런 식으로 자꾸 훼손할 바에는 한전을 그냥 상장폐지하고 공익법인으로 만드는 게 나을 것”이라고도 토로했다.

또 다른 투자자 B씨는 “주주에게 묻지 않고 권력 마음대로 기업 이익에 피해를 끼치는 행위는 독재와 다를 것이 없다”며 “전기료 인하에 따른 적자를 정부가 보상해주지 않으면 집단 소송이라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