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를 사실상 허용하면서 경영 간섭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국민연금이 오너 일가의 '갑질'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총수 일가가 사적인 이익을 취할 경우 해당 기업의 경영에 개입할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연금 운용의 독립성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영 참여만 이뤄질 경우 기업 경영에 부담이 돼 오히려 국민연금 수익률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동계 주장 반영된 스튜어드십 코드

이날 4시간 가까이 진행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의 승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노동계·시민단체 측 위원들이었다. 회의에 배석한 한 인사는 "노동계 측 추천인사 3명과 참여연대·소비자모임 측 추천인사 2명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경영 참여가 꼭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마치 똘똘 뭉쳐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회의가 길어지자 "표결에 부치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민감한 사안에 의견이 갈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아서 표결은 진행하지 않았다.

지지부진하던 논의는 휴회(休會)를 거친 뒤 급격히 진전됐다. 노동계·시민단체 측 위원들이 "기금위가 의결하는 특별한 사안만이라도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주주 활동을 펼치게 해달라"고 한발 물러선 데다, 정부 측 위원도 "사실 지금도 기금위가 결정하면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가 가능하다"고 설명하자 재계 쪽 위원들이 '백기'를 들었다. 한 재계 측 위원은 "경영권 간섭이라는 기업의 우려를 계속 전달했지만 대세가 형성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경영 참여로 연금 관치주의 우려 커져

'연금 관치주의'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기업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면 기금위가 의결해서 예외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안건 선정은 기금위 산하 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기금위원이 직접 제기하되, 위원 간 심도 있는 토론을 거치겠다고 했다.

문제는 기금위 구성 자체가 정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총 20명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각 부처 차관 4명,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정부 관련 인사가 6명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근로자 대표(3명)와 시민단체가 추천한 지역가입자 대표 등이 합세하면 과반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기금위 의결만 거치면 특정 임원을 해임할 것을 제안할 수 있고, 또 경영진 일가의 사익 편취가 발생한 기업에 사외이사를 추천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의 경영성과뿐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비(非)재무적 요소를 평가하기로 한 점도 '기업 길들이기'에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제품 안전 관리 등 기업 가치와 관련된 영역뿐 아니라, 기업의 고용 수준, 협력업체를 지원하는지 여부, 기부금, 3년 내 배당 지급 등 기업 경쟁력과 무관한 분야까지 평가 요소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이러한 52개 요소를 기준으로 매년 '기업 성적표'를 만들고, 등급이 크게 하락하면 의결을 거쳐 즉각 주주활동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보다는 경영 간섭 우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 목적인 '국민연금의 수익률 제고'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주주활동이 기업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이 아니라, 기업 통제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스튜어드십 코드에 포함된 배당 관련 주주활동 개선(올해 하반기 예정), 중점관리기업 공개(2020년 예정) 등이 이미 해외에서는 도입을 포기한 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 캘퍼스(CalPERS)의 경우 '포커스 리스트(중점관리기업 명단)' 공개를 2011년부터 비공개로 전환했다. '망신주기'식 대응보다 기업과의 비공개 대화가 투자수익률 제고에 더 좋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일본 연기금(GPIF)의 경우 투자 기업의 배당보다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을 평가한다.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는 최근 공청회에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과도하게 배당 문제에 집중돼 있다"며 "일본처럼 기업들의 자기자본이익률 관점에서 모든 의결권과 주주권 행사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