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홈플러스·하나로마트·롯데마트·메가마트 등 국내 5개 대형마트들은 지난 4월 환경부와 '일회용품 감축 자발적 협약식'을 가졌다. 이들은 "매장 내 비치된 속비닐의 크기를 줄이는 것만으로 전체 비닐 사용량의 30%가 감축된다"며 "여기에 롤백(속비닐이 둥근 원통에 말려있는 것)을 비치하는 곳을 최소화하는 방식 등으로 2020년까지 비닐 사용량을 50%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마트를 제외한 나머지 대형마트들은 협약식 체결 후 석 달이 지났는데도 이렇다 할 감축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비닐 과소비 부추기는 대형마트

본지 기자들이 이 대형마트들을 찾아가 보니, 장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얇은 비닐(속비닐)을 뜯어 상품을 담았다. 흙이나 물기가 묻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매장에 비치된 롤백에서 속비닐을 뜯었다. 특히 속비닐보다 더 두꺼운 플라스틱으로 포장돼 속비닐을 쓰지 않아도 되는 김·과자 같은 상품 매대에도 속비닐이 비치돼 있었다. 이것저것 상품을 많이 골라 속비닐에 한꺼번에 담아가라는 마트 측의 상술이 시민들의 비닐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이다.

카트에 바로 담아도 되는 데… 대형마트 겹겹 포장 - 지난 13일 경기도의 한 대형마트 정육 코너에서 점원이 스티로폼 받침과 PVC 랩으로 포장된 고기를 다시 한 번 속비닐로 이중포장하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 6시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 정육 코너에서 저녁 장을 보는 손님 10여 명이 진열대 앞에 비치된 속비닐을 뜯어 돼지고기 등 육류 제품을 담고 있었다. 150~200g씩 손질된 고기들은 스티로폼 트레이에 얹혀 투명한 랩으로 감싼, 이미 포장이 된 제품이다. 그냥 카트에 담아가면 될 것을 굳이 속비닐에 담는 것이다. 가로 30㎝, 세로 40㎝ 크기 속비닐은 매장 곳곳에서 쉽게 발견됐다. 홈플러스 남현점에선 견과류·김·육포 등 손상 우려가 없는 포장 제품들을 진열한 매대에도 속비닐롤을 비치했다.

속비닐은 마트 비닐 낭비의 가장 큰 원인이다. 속비닐은 재질이 얇고 한번 물기가 묻으면 제거하기 어려워 재활용하기 어렵다. 일부 마트에서는 점원들이 속비닐을 벨트 형태로 차고 다니며 손님이 물건을 고르자마자 비닐을 펼쳐주기도 했다. 본지 기자가 고양시 덕양구 하나로마트 정육 코너에서 랩으로 감싸 트레이에 담긴 돼지고기를 카트에 담으려 하자 점원이 굳이 속비닐에 담아 물건을 다시 건네주기도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홈플러스·롯데마트·하나로마트·메가마트 등 네 곳의 월평균 속비닐 사용량은 약 107t"이라며 "이들 마트가 이마트 방식으로 속비닐을 줄이면 한 달에 약 1280만장(64t)을 감축할 수 있다"고 했다.

이중 포장 문제도 여전

속비닐과 함께 '유색 스티로폼 트레이 퇴출' 약속도 지지부진하다. 본지 기자들이 둘러본 홈플러스 합정·영등포·잠실·남현점 등에서는 육류·어류 등 제품이 유색 트레이에 담겨 판매되고 있었다. 일부 흰색 받침도 있었지만 파란색과 검은색이 많았고 무늬가 인쇄된 코팅 받침을 사용하는 경우도 진열대에 놓인 제품의 60%를 넘었다. 스티로폼 받침은 색깔이 있거나 무늬가 인쇄된 경우 재활용품의 질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전량 소각·매립된다.

완제품을 이중으로 포장한 '묶음 상품' 문제도 여전하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는 이미 포장된 두 개 이상 제품을 또 다른 비닐봉투에 넣어 파는 제품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과자·라면·냉동식품·유제품 등 거의 모든 종류 제품이 포함됐다. 이 매장은 외국인 방문객 매출이 전체 15%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트 측은 "대량 구매하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원순환연대 김태희 사무국장은 "묶음 포장을 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구매량이 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여러 개를 구매할 때 할인이 있다는 안내문만 붙여 놔도 충분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