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 철기 시대에 이어 우리는 유리 시대(글라스 에이지)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지난 18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의 코닝 연구·개발(R&D) 센터에서 열린 강화유리 신제품 '고릴라글라스6' 발표 행사장에서 존 베인 코닝 특수소재사업부 부사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유리는 가장 중요한 첨단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면서 "삼성전자의 갤럭시S 시리즈와 애플의 아이폰 같은 첨단 스마트폰은 전면은 물론 후면에도 유리를 쓰기 시작했고 5G(5세대) 이동통신에서 종전보다 훨씬 빠르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핵심 인프라인 광섬유(光纖維) 역시 유리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약하고 잘 깨지는 것'의 대명사인 유리가 첨단산업 시대의 핵심 소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리 한계 극복하는 기술 속속 개발

코닝과 일본 아사히글라스, 독일 쇼트 등 글로벌 유리 제조사들은 최근 더 얇고 내구성이 뛰어난 유리를 개발하고 있다. 유리가 금속이나 플라스틱 같은 다른 소재는 가질 수 없는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유리는 공기와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또 플라스틱과 달리 투명하게 빛을 투과시키고, 밀폐 성능이 뛰어나면서 긁힘에도 강하다. 최근 스마트 기기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무선(無線) 충전에서도 탁월한 성능을 발휘한다. 조시 제이컵스 코닝 기술 매니저는 "종전에 사용하던 금속 소재는 전자기장 때문에 무선 충전 과정에서 간섭을 일으키지만, 유리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최근 프리미엄 스마트폰이 모두 후면 유리를 채택한 것도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유리를 압축하거나 표면을 화학약품으로 단단하게 만드는 방식을 썼지만 무거워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리 기업들은 '이온 교환 방식'을 개발했다. 유리를 액체 상태인 고온의 소금에 담그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유리 표면에 있는 작은 나트륨 이온이 빠져나가고, 그 빈자리를 소금에서 나온 크기가 큰 칼륨 이온이 채운다. 유리 표면이 더 오밀조밀하게 메워지면서 충격에 강해지는 원리이다.

이 기술을 적용한 대표적 제품이 코닝의 신제품 '고릴라글라스6'다. 고릴라글라스6는 갤럭시S9과 아이폰X(텐) 등에 사용하고 있는 고릴라글라스5보다 강도가 배 이상 높다. 1m 높이에서 화강암이나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뜨려도 평균 15번 견딜 수 있다. 스마트폰 업계 관계자는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하반기 출시되는 프리미엄 제품에 고릴라글라스6를 채택할 계획"이라며 "현재와 같은 발전 속도라면 플라스틱보다 강하고 깨지지 않는 유리도 수년 내에 등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최근 유리 업체들은 차세대 스마트폰을 위한 연구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점식 한국코닝 특수소재사업부 사장은 "강도를 높이는 것뿐 아니라 폴더블(접히는) 스마트폰이나 롤러블(돌돌 말리는) 스마트폰에 사용할 수 있는 커버 유리에 대한 연구도 열매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통신에도 활용도 높아

자동차 업체들과 통신 업체들도 앞다퉈 유리 소재 적용에 뛰어들고 있다. BMW, 포르셰, 피아트 크라이슬러 등은 얇고 가벼운 특수 유리를 자동차 전·후면 유리와 선루프 등에 채택하고 있다. 최근 등장한 자동차용 특수 유리는 기존 강화 유리에 비해 중량이 30% 이상 줄어든 반면 내구성은 2배 이상 강하다. 자동차 업체들은 전면·측면 유리를 디스플레이처럼 쓰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이나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전면·측면 유리에 표시하면 사용자들이 훨씬 편리하게 볼 수 있고, 자동차 내부 공간도 훨씬 효율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 내·외부 자재로도 유리 활용이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터치 기능 등을 적용해 건물 전체가 한 스마트 기기처럼 작동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인 데이터 센터와 통신망 구축이 늘어나면서 광섬유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광섬유는 빛을 머리카락 굵기의 수십 분의 1에 불과한 유리섬유에 가두어 보내는 통신용 소재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광섬유 한 가닥으로 구리 전화선 수만 가닥과 비슷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유리 소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